이제는 말할 수 있다. - 5 (부천ㅊ교회살리기) 노회장이 다시 부노회장 출마가 왠 말인가?
부천ㅊ 교회는 (지금은 ㅈ 교회) 1992년 전에는 통합교단이 아닌 합동측 모교단 소속 교회였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가 문제가 생겨서 지금의 원로인 y목사가 당초 서울S 노회 김포 J교회에서 시무하다가 문제의 교회로 부임해 옴으로 인해 본 교단 노회로 B교회로 가입이 되었다. (타교단 소속 교회를 본교단 교회로 가입시킴) 그러다가 교회가 부흥하여 인근 수도권 1기 신도시로 중동신도시 구역으로 당시 종교부지 250여평을 구입하여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지하당에 본당을 설치하고 지상에 5층으로 아주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건축했다. 나는 그 교회가 교회당 건축 중에 얼마나 어려움에 처했는가에 대해서는 후일 그 목사에게 들었지만 그때까지 나는 그 목사와는 한 노회 소속이고 나는 처음 1992년 안수받은 개척 신입 목사였다. 그러나 그 목사는 당시 서울S노회에서 교회나 노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안다.(노회 임원) 그러다가 노회가 1999년도에 서울S 노회 로부터 분립되어 B노회라고 부르게 되었고 초대 노회장에 당시 B교회 시무하던 N목사를 선출했다.
부천 J 교회 부흥
내가 알기로는 부천 J교회는 수도권 제 1기 신도시 중동 신도시에 사람들이 처음 입주할 시에 (1993년) 교회당을 건축 완료하여 입당했다. Y목사는 중동 신도시에 교회당을 건축 입당하고 활발한 전도활동을 하였다. Y 목사는 교인들과 자신의 설교를 테잎으로 만들어서 신도시에 처음 입주한 사람들을 집집마다 전도 공략하여 급속히 부흥하였다. (당시만 해도 목사의 설교를 테잎으로 만들어 전도 할동에 활용하지 않음) Y 목사 교우들의 전도 열의는 중동신도시 입주민들 가정에 교패가 붙은 가정마다 (기존 교인들) 자신의 설교 테이프로 전도라는 이름으로 공략하여 그 교회는 교인수가 날마다 늘어났다.
영원한교회 개척
당시 나는 1991년 11월경 전도사로 시무하던 교회에서 목사안수 5개월을 앞두고 사임하고 당시 담임목사로부터 개척교회 건물 보증금으로 1500만원을 차용하여 부천시 심곡동에 작은 상가 3층에서 개척을 시작했다. 그 이듬해 3월 9일에 주일 오후에 노회 주관 개척 예배를 드렸고 그곳에 1년 살다가 그 이듬해 5월에 중동신도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3층으로 이전하였다. (당시 전용 12평은 교사 퇴직금으로 구입하고 옆칸 18평은 월세로 얻고 집은 월세로 아파트에 얻음) 우리 교회가 중동신도시로 1993년 5월 상가로 이전하여 우리도 열심히 전도하였다. Y 목사는 평소 설교 잘하고 중동신도시에서 인기도 있었던 터라 그 교회는 급속히 부흥하게 되었고 우리교회는 상가교회라 한계가 있었다. Y 목사 교우들이 얼마나 전도열의가 있었는지 주일에 우리교회 상가 3층에 예배 드리러 올라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버스를 교회 앞에 새워두고 자기들의 교회 가서 예배 드리자하면서 교회 버스로 중동 신도시를 누볐다 (당시 처음 중동신도시 입주민이라 교회를 정하지 못한 상태의 교우들이 많은 관계로 이해는 되지만 설교 테이프 공략 등 과열 전도로 기존 교회 반발이 심함)
중동신도시 목회자 협의회 회장(1993년)
나는 당시에 중동신도시 교회 목회자 협의회를 만들어서 회장직을 맡아서 교회 간 과열 경쟁을 막고 친목을 도모하며 이제 갓 입주하는 중동신도시 교회들 간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단체였다, 물론 Y 목사는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전도하여 교회당을 건축하고 교회를 부흥시켰다. (소문은 나중에 당시 약 3000여명이 출석)
지금의 원로 Y목사는 B노회 제 3대 노회장을 역임했고(당시 노회장 선출시에 결정적인 도움을 내가 줌- 본인도 인정) 나는 노회 분립 이전 노회에서는 6년동안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8년 10월 노회 분립 이후부터 서서히 노회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Y 목사 교회 분쟁 (검찰 진정.검찰 고소건–무혐의.1심 무혐의 2심 기각) PD 수첩 방영
그러다 2012년 하반기부터 Y 목사의 목회에 대한 반발 세력들이 일명 ‘재투모’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만들어서 교회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문제 제기에 내용은 Y목사가 교회 돈을 횡령 배임해서 교회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내부적으로 시끄러웠고 급기야는 MBC 문화방송 PD 수첩까지 방영하게 된 것이다. 당시 재투모는 Y모 목사를 부천 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받아 무혐의를 받았다. 당시 나는 그 당시 B 노회 노회장이 되어서 이 교회 문제에 대해 신속히 내 온 역량을 동원하여 돕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반대 세력들을 강력히 대처하여 당회에서 일괄 권징하여 출교를 시켰다. 그들은 출교 후에 조직적으로 대항했는데 거기에 노회 안에 당시 기독교 노조를 만들어서 노조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이목사가 개입하여 그들과 합세하여 Y 목사 교회를 어렵게 했다. 그들은 Y 목사를 배임 및 횡령으로(약 200억이 넘는 교회 돈에 대한 문제 제기) 검찰에 진정하여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자 다시금 정식적으로 검찰에 고소하였고 검찰은 다시금 무혐의 처분했던 것을 지검장을 상대로 반대세력들이 MBC 수첩을 동원하고 시청이나 여러 곳에서 기자 회견을 통해서 Y 목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 법원 정문에서 현수막을 들고 여러날 시위하였다. (검찰에서 돈먹고 무혐의 처분했다라고 의혹 제기) Y 목사 교회는 교회 안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교회에 대출해준 은행들이 상환 독촉이 왔고 급기야 엎친데 덥친격으로 교회는 경매로 나오게된 것이다. (당시 약 200억)
당시 Y 목사는 상당한 어려움에 처했고 노회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도와줄 생각은 커녕 Y 목사와 평소 잘 지내던 여러 목사들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당시 노회 안에 이목사는 그들과 합세하여(기독노조위원장) Y 목사를 공격하고 당시 부목사로 시무하던 H 목사(당시 이탈 교인들과 B노회로 가입하려던 것을 본인이 거부하여 이웃 노회로 가입함)가 가명으로 글을 써서 이탈 세력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기고하여 더욱 싸움을 부추겼다. (나중에 익명 기고한 사람을 경찰에 고발하여 정보 조회해 보니 당시 Y 목사 교회 부목임) 이로 인해 Y 목사는 거의 사면초가가 되었다, 노회 안에 거의 모든 목사들이 외면하고 PD 수첩 방영 이후 그 내용을 사실인양 퍼트리고 수근되기 시작했다. Y 목사는 평소에 머리가 명석해서 경영 전략이 뛰어나기에 노회 안에서 새로운 제안을 많이했다. (미자립교회 목사 부부 사회복지사 공부 시키기 등) 그러나 지금까지 노회를 섬기던 공로는 어디간데 없고 거의 모든 목사 장로들이 외면하고 오히려 비방의 대열에 가담했다, 나는 온갖 힘을 다해 (당시 노회장) 그 교회를 돕기 위해 여러번에 걸쳐서 초청받아 교회 안정을 위해 설교로 도왔다 . Y 목사는 교회 대출 이자를 교회당에 법원 경매로 나오게되자 2014년에 조기 은퇴 신청을 하였다,(원래는 2018년 정상 은퇴) 나는 당시 노회장으로서 본인의 희망대로 폐회 중에 임원회에서 결의하여 조기 은퇴를 허락하였고 Y 목사는 총회에 연금으로 약 2억원 가량을 연금 일시불로 받은 것으로 알며 그 돈으로 교회 이자를 불입한 것으로 지금도 나는 알고 있다. (당시 9월 총회에서 연금 대폭 축소로 총회 이후 가을 노회에서 정상 은퇴 처리했으면 약 6000만원 정도 덜 받았을 것임- 나중에 나에게 고맙다 표현함) 나는 노회 개회 설교 중에 지금도 회자되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 나는 Y 목사가 설혹 죄가 있어서 감방에 간다고 해도 검찰이나 재판장의 말보다 Y목사가 아니라면 그 목사의 말을 믿는다- 라고 설교하여서 많은 회자가 되었다. 상대측 이탈교인들은 계속 Y목사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공략을 했고 Y 목사는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여(당시 지원장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맡음)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당시 상대측 변호사는 현재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교회법 전문 변호사 K 변호사였다. 그들은 1심에서 패해도 승복하지않고 고등 법원에 항소하였다. 나는 당시 1심과 2심 고등법원에 재판 과정을 한번도 빠지지않고 방청하여서 그 사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된 것이다. 그래서 다른 목사와 장로들이 사건 당사자로 고통받는 Y 목사의 말을 들어보지고 않고 PD 수첩에 방영된 사실인양 많은 노회원들이 떠들고 다닐때 나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변명하느라 평소 혈압 전혀 없던 내가 무려 혈압 160이상으로 올라 가게된 것이다.
다행히 2심 고등법원에서 교회 이탈측 성도들이 항소한 것을 기각시키므로 인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뒤에 이탈측 교인들이 당초에는 200여명이 나갔고 이도저도 싫다하여 1000여명이 이리저리 흩어지게되고 당초 교인들 3000 여명에서 1000여명 이내로 줄어들게된 것이다.
노회장이 부노회장 출마가 왠말이냐? (Y 목사 교회 후속 행정적인 처리 돕기 위한 조처 – 교회살리기)
그런데 나는 2014년 10월까지 임기인 노회장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노회장에서 물러나면 Y목사 교회에 문제 해결이 아직 많은 부분들이 남아 있었다. Y 목사가 법적으로 은퇴하므로 인해 후임 목사 청빙과 임시당회장 파송 문제가 다음 장로 노회장 몫으로 넘어 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교회 후속 처리 과정에서 또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어서 부득불 노회장한 사람이 다시금 부노회장에 출마하게된 것이다. Y 목사 교회 행정적인 처리과정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돕기 위해 노회원들에게 조롱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 노회장에서 다시금 부노회장으로 출마하게된 것이다. 선거 결과 낙선하였고 나는 그일로 많은 조롱을 받았다. 이 일로 인해 현재 예장-스(유재 –목사)인터넷 신문과 황씨 운용하는 (당시 에클레--)인터넷 신문에서 나를 아주 권력에 눈 먼 목사로 몰아서 – 노회장이 부노회장 출마가 왠일이냐?라고 조롱 섞인 기사를 회자하였고 나는 Y 목사 교회를 끝까지 교회 법적과 행정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에 대해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조롱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황씨와 유모- 목사는 나에게 사과는 커녕 오히려 예정연 대표회장에서 까지 흠집을 내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 Y 목사에게 당신네 교회 살리기 위해 한 일인데 지금도 그 문제로 조롱받고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 노회장에서 다시 부노회장 출마하여 감투에 눈먼 목사로 매도 당함) 상식적으로 노회장하던 사람이 부노회장을 왜 탐낼 것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사람이면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Y교회(당시 부천제일교회) 끝까지 살리기(행정적인 법적인 도움 주기위해) 위한 부득이한 출마였음을 분명히 밝히고 Y 목사는 지금도 나한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당시 부노회장 출마 기부금 100만원도 이제는 말하지만 Y 목사가 준 돈임을 밝힌다)
내가 노회장에 물러나기 전에 Y 목사에 대해 은퇴 및 원로목사 처리하여 예식을 치루었다. 그러나 내가 노회장에서 물러나고 후임 노회장으로 장로 노회장 체제에서 임원들이 잘 협조하지 않아(물론 노회 행정 처리 미숙)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고 그 일로 나는 계속 개입하여 임시 당회장과 후임 목사 청빙처리 까지 마치게 됨으로 행정적인 처리는 모두 마치게된 것이다. (Y 목사 교회 후속처리로 인해 나는 내 뒤 임원들과 상당한 마찰을 초래함)
Y목사 교회는 그 이후 교회당 경매는 아들 목사 O 노회 소속 교회로 은행에서 넘겨가고 본래 Y목사는 아직도 당시 교회 빚으로 완전한 정리가 되지 못해서 지금도 어려움서 완전 해방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자신의 이름으로 통장이나 카드도 못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원래 개명한 C교회는 경매 이후 옆으로 이전하여 아주 작은 교회로 전락하여 근근히 유지하고 있다, 당초 출석하던 교회 성도들은 아들 교회 지성전으로 남아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위 글에서 대략은 맞지만 일부 Y 목사에 대해서는 조금은 틀릴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2019.01.27. 주일 새벽 3시 잠에서 깨어나서 예장통합정체성과 교회수호연대 대표회장 최경구 목사 (부천노회 전노회장.영원한교회 위임목사) (국가공인행정사, 행정사전문연구회 회장) <저작권자 ⓒ 예장통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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