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369호. 서울노회 서정오 목사는 죽는 날까지 그 입을 닫아라. 서울노회 내 새문안 연동 그리고 28일 촛불기도회 유경재 목사가 나서니 입이 근질한가 보구나.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19/10/22 [02:14]

카드뉴스 369호. 서울노회 서정오 목사는 죽는 날까지 그 입을 닫아라. 서울노회 내 새문안 연동 그리고 28일 촛불기도회 유경재 목사가 나서니 입이 근질한가 보구나.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19/10/22 [02:14]

 

 

▲     © 예장통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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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회 동숭교회 서 정 오 목사회 총회를 돌아보며 올리는 공개 회개와 탄식문

 

이 날이야 말로 목 놓아 울 때가 아닌가?

( 續 是日也放聲大哭)

 

유구무언 (有口無言)!

입이 100 개라도 할 말은 없습니다.

우리가 결의해 놓고,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정확하게 법을 따지자면 어찌 할 말이 없겠습니까만,

지금은 다만 너무나 부끄럽고 황망해서 입 다물고 조용히 물러 앉아 있고 싶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자니, 속에서 울화가 터지고 가슴이 먹먹하여 외마디 소리라도 지르고 싶고,

침묵하자니,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도 없고, 교인들을 향해 부끄러워 설교할 면목조차 없기에

이렇게라도 헛소리를 질러대야 할 것 같습니다.

 

자랑스러운 통합총회 선배님들과 역사 앞에서, 그리고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며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우리 104회 총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너무나 순진해서 총회장의 개회 설교를 문자 그대로 믿고 감격했고, 

연로한 증경총회장님의 읍소 앞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용서하옵소서.’

 

이렇게 가슴을 치며 회개하면서도 답답하여 미칠 것 같으면서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수 없고, 한 번 결의했으니, 이제는 입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들의 말 앞에 

딱히 공범인 내가 큰 소리로 대답할 면목이 없어 수치스런 맘으로 통곡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가 사회에 모범이 되고 희망이 되기는커녕, 근심거리가 되고, ‘개독교’라 욕먹고, 

그동안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교회 하나만큼은 지켜 보려고 노력했던 선배들과는 달리,

조금만 부끄러운 일이 보여도 가차 없이 교회를 떠나가는 젊은 신앙인들을 포함해서 1년에 7 만명씩,

지난 3 년 간 우리 교단에서 사라진 24 만 명 이상 교인들 대부분이 

‘가나안 교인’(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교회에 넌덜머리를 내서 떠나는 이들)들이었을 것을 생각해 보면,

‘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거 앞에 총회의 결정대로 침묵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다 잡아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지난 일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는 총회장님의 개회설교에 정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법도 지켜야 하고, 이제는 화해와 연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호소에 그 진정성을 전폭적으로 믿었습니다.

보통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을 조건 ‘토론없이 가부를 결정하자’는 말도 안 되는 조건까지도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우리는 너무나 순진했습니다. 

그런 잔꾀와 군중선동의 술수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수습안은 처음 약속했던 것과 같은 ‘법도 살리고 화평의 정신도 살리는 안’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수습안은 ‘법은 죽이고, 명성은 살리는’ 말도 안 되는 불법적 폭거의 증거물입니다.

‘법을 잠재우는 것’이 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헌법이 분명하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그런 수습안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안’을 통과했다 해도, 적어도 헌법개정의 절차도 무시한 채 그냥 밀어부쳐서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총회에서 결정했다 하더라도, 시행에 대한 정당한 절차가 있어야 하거늘, 

어찌 진행발언조차 허락하지 않으면서 밀어 부친 결의를 코앞에 내어 밀면서 ‘순종’만 요구한단 말입니까?

 

모든 총대들은 이토록 오래가는 세습문제에 대하여 어떤 모습이든지, 이번에는 은혜롭게 종결하고 싶었습니다. 

총대들 중에 명성을 죽이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법을 죽이고 명성을 살리는 ‘야합’이 아니라, 법도 살리고 명성도 살리는 지혜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명성은 살았을지 모르나(그것도 당분간일 뿐), 총회 법은 명백히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총회도 죽었습니다. 헌법을 죽인 총회가 살았다 할 수 있습니까? 

1,500명 총대가 다 통회자복하고 총회를 새롭게 시작하지 않는 한, 이제는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시끄럽고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103회 총회 문제는 법적인 해석에 국한되었습니다.

헌법해석과 재판국에 대한 해석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였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104회 총회는 헌법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아니 죽였습니다. 

그 순간, 총대들도 다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총회장님 !

이 자승자박의 굴레를 어떻게 풀어가실 작정이십니까?

명성은 수습안에 순복하고 있습니까? 

아니,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버지는 대리당회장으로 아들은 설교목사로 세웠다 합니다.

수습안에서 제시됐던 것과도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총회만 우습게 되고, 

교회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총회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1 년은 그래도 통합측 총회는 한국교회의 일말의 희망의 빛을 주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자정능력이 아직은 있다는 희망을 세상은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교인 중에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교단을 떠날 것인가? 교회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아애 신앙을 버릴 것인가?’

‘전에는 가나안 교인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교회로 나오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나도 언젠가는 저들과 합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 큰 교회 명성의 교인들을 붙잡으려고 지난 3 년 동안 24만 명이 줄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가요?

아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줄어들어야 정신을 차리시렵니까?’

 

이렇게라도 목사 앞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말없이, 아주 조용하게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 한 교인이 필자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목사님, 한국교회는 망해야 합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사랑하는 주님의 교회를 어쩌면 좋습니까?

내 사랑하는 노회와 총회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필자는 3 년 후면 은퇴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속시원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피로 세워진 한국교회를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 후배 목사들, 우리 사랑하는 순수한 신앙의 백성들, 불쌍해서 어쩝니까?

 

4 차 산업혁명으로, 수축사회로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불안의식과 우울증과 각종 정신질환이 급증하고 있는 이 때에,

살아있는 영성의 교회들, 

세상의 도덕과 윤리와 가치 기준을 온전히 세워주어야 할 교회들이 세상을 품어야 하는데,

살아계신 예수님의 피묻은 복음으로 세상을 좀더 따뜻하고 밝은 세상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채,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 앉아 있어야만 합니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교회의 머리되신 주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2019-10-21

 

104회 총회에 참석해서 역사 속에 부끄러운 죄인이 된 총대 

 

서울노회 동숭교회 서 정 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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