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연, 104회 총회 앞두고 기도회(9월 16일) 참석 후 소회

우리 집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내 집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자녀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19/10/23 [16:26]

예정연, 104회 총회 앞두고 기도회(9월 16일) 참석 후 소회

우리 집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내 집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자녀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19/10/23 [16:26]

 

▲     © 예장통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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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부끄러움”  (19.9.17)

 

  2019. 9.16 일은 월요일  종로 5가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 1층 11시.  회의장의 열기는 후끈했다. 그곳에서 가진 2시간 여는  내내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백컨대 그것은 회한과 무지와 무책임의 나에 대한 나무람이었다.

연사님들 대부분 우리 교회가 크게 관여하지도, 도움도 주지 않았던 생경한 분들이었다.

그러나 명성교회와 교단 살리기 기도는 명성교회 교인으로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열풍과 함께 하는 2시간여 내내 나는 다음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성교회를 맘몬이라고 스스럼 없이 부르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명성교회가 이루어져 온 지난 길을 당신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명성교회의 지나온 고난의 길 속에서 눈물과 땀 기도와 은혜로 이루어진 열매가 왜 맘몬이 되어야 하는가.  언제 명성교회가 주신 열매를 우리만의 소유로만 삼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명성교회가 이룬 수많은 역사를 인간이 가로채기 두려워 알리지는 않지만

그동안 당신들은 열매를 나누는 명성교회의 모습을 보고 듣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를 굳이 외면하는가, 당신들은 명성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눈물의 광야 40년 사역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목회에 가장 탄력을 받을 30대에 폐병 中期로 모두들 산에 오를 때 갈 수 없어 혼자

숙소에 남아 눈물로 찬송만 해야 하는 죽음 앞에 놓인 젊은 목회자의 절망을 알고 있는가

  함께 폐병을 앓는 아내와 함께 피를 토하며 주사를 놓아주어야 하는 그 절망의 시기를 당신들은 겪어 보았는가

  열악한 농촌 목회시절, 병약한 아내와 아이 셋을 두고 죽을 수 없어 제발 40대까지만 살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해 본 그 젊은 목회자를 알고 있는가 

  ‘제발 좀 나가달라’ 며 사택 방 옆에 베니아판을 막고 그 옆에서 놀고 떠드는 부랑아들의 노골적 목회 훼방에 하나님 붙잡고 눈물 흘려 본적이 있는가

  鷄舍도 얻지 못해 서울 동쪽 끝자락 허허벌판 명일동 500번 종점 2층 23평 교회 한 켠에 스티로품을 깔고 만든 숙소에서, 어느 스산한 가을 날 창밖으로 날아가는 새떼를 보고 이 숙소도 감사하여 눈물 흘리며 찬송해 본 적이 있는가    

  교회 중도금을 주지 못해 예배 중 주인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가 예배 후 모아진 헌금을 통째로 털려본 기억이 있는가. 이런 아픔의 공유도 없이 오늘의 명성교회를 감히 폄하하지 말라. 왜냐 하면 명성교회의 오늘은 이러한 지고한 고난을 통해 얻어진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때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아니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함께 눈물이라도 흘려주었느냐 말이다. 아무도 돌아 볼이 없는 광야에서 어른거리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 앞에서 오직 주님만 붙들고 나가야 했던 가난하고 외로운 한 젊은 목회자를 거들 떠 보기나 했느냐 말이다. 

           

 “자녀의 부끄러움”      -두번째-    

  명성교회 정상화를 위한다는 고귀한 분들에게 묻는다

무엇이 정상인가. 당신들이 주장하는 정상이란 무엇인가? 명백한 답을 듣고 싶다

예수교 장로교 통합 헌법과 정해진 법에 의해 우리는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청빙절차를 밟았다. 이것이 왜 비정상이 되는가

 전임목사의 목회철학을 잘 승계하고 교인들의 영적 양육에 모든 것을 거는 겸손한 목회자의 청빙 결정이 왜 잘못되었는가. 

  아~ 하나 있구나,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혈육 문제?

 당신들은 자신의 몸인 교회를 지키는 예수님께 과연 인간 문제인 혈육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필요하시면 소를 모는 농부도 불러 사사로 쓰시고 양떼에서 다윗을 부르셔서 왕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자신이 세우신 사울왕, 엘리제사장도 합당치 않으면 바로 내치셨다. 이것이 통치의 하나님만이 누리는 치리의 법칙인 줄 정녕 모르는가 

  좋다 백번 양보하자. 

자식이 아버지의 교회를 이어 받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모든 것을 거는 분들에게.

하지만 아무리 자식이라도 자격이 없으면 청빙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청빙투표에 참여한 명성교회 교인들이 그렇게 무지한가. 물론 상당수 청빙 반대자도 있었다

당연하다. 우리는 반대자의 의견도 겸허히 인정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로교의 가장 중요한 개교회의 당회에서 인정하여 전 교인의 투표라는 적법한 절차를 가져 교인의 선택에 의해 청빙이 이루어졌다. 맛디아를 세울 때도 교인의 선택에 의했고 교인의 자율에 맡겼다. 

이것이 비정상이다?

 

  그렇다면 전임목사와 후임목사와의 갈등으로 지지파가 양분되고 결국은 교회가 나누어지고 쪼개지고 분열이 되는 것이 정상인가.

  아니면 전임목사의 목회철학을 잘 받들고 교인을 말씀으로 양육하여 교회를 안정시키고 겸손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비정상인가 

  혹자는 나의 이러한 비약을 나무랄지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의 승계 갈등을 겪은 교회는 페허가 되었다. 양떼들은 삭막한 광야로 내몰렸다. 이리떼에 노출된 양들을 보고 어둠속에서 음습한 미소를 짓는 자는 누구인가. 결코 당신들은 아니라고 믿는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애써 부정하지 말자. 

아니 똑바로 적시하자.

그리고 무엇이 정상인가를 분명히 답해 주길 요청드린다.   

 

 “자녀의 부끄러움” -세번째-

 명성교회를 세습이라고 굳이 부르시는 신학대학 일부 교수님들에게 묻고 싶다

명성교회의 청빙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있고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하나님의 뜻에 냉소를 보이며 심지어 왜곡까지 하는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는 데 왜 그렇게 인색한가

차가운 머리만이 당신들의 전부인가, 왜 뜨거운 가슴은 애써 외면하는가

편협한 지성이라는 프레임을 한번이라도 고심했거나 자책해 보았는가

세상의 소리에만 왜 그렇게 민감한가, 

하나님의 뜻을 진정 모르는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하는가

평신도인 우리들의 눈에도 보이는데.

세상의 사람들이 그러 할 때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이 아닌가

논리에 내몰리어 부서져버린  믿음의 파편들을 언제 붙이려 하는가 

“자녀의 부끄러움” -네번째-

  우리는 우리와 반대편에 선 좋은 동역자들을 잊지 못한다. 하나같이 명성교회 부흥의 기적의 열매에 함께 은혜 받았던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 분들은 우리의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픔을 가지고 교회를 떠났다. 아쉽지만 보내 드려야 했다.   

 그분들의 좋은 신앙의 지속을 위해서다.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는 떠난 그 분들의 뒷 모습이 아프게 남아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 분들의 뜻을 헤아린다면 명성교회는 더 안정이 되고 성장해야 한다. 그것은 여기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몇 일 앞으로 다가온 104회 총회는 명성교회로서는 성장이냐, 머무름이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일전이 될 것이다.

  나는 이날 당사자인 우리보다 더 우리의 앞길을 걱정해 주고 기도해 주는 수많은 분들의 기도와 함께 했다. 힘도 생겼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왜 우리는 여태껏 이러한 외부의 함성에 둔감했던가. 

아니 모른 척 했던 것이 더 맞은 것이 아닌가, 무책임의 소치였다.

‘내 집안이 분탕질을 당하고 내 아버지가 멱살을 집힌 채 끌려 다니는데  자녀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며  연사중의 한 분이 명성교인을 향해 던진 일갈의 이 말씀은 내내 나의 폐부를 찌르고 다녔다.

 

  현장에서 느꼈던 이분들의 진심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명성교회와 교단을 함께 살리자

갈등보다 봉합을 위해 기도하자는 것, 그러면서도 결연한 의지도 내어 보이셨다.

“다른 교단에도 하나님이 있고 구원이 있고 부활이 있으며 찬양이 있고 헌신과 봉사가 있다

 명성교회도 이제는 교단을 떠날 결단까지 해야 한다!!!“

마지막 연사님의 결연한 선포는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렇구나..명성교회 교인들도 이제는 중요한 결단 앞에 서 있구나. 그럴 때가 왔구나

여지껏 우리가 침묵한 것은 미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세상은 가야바의 공회같이, 빌라도의 법정같이 세상의 소리로 우리를 재단해 버렸다.  아하~~당신들의 침묵은 결국 우리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구나.

이것이 맞는가. 아니다 분명 아니다.

이제는 아닌 것은 분명 아니라고 해야 할 때다.

그런 결연함을 보일 때는 지금 이 순간이다. 먼저 104회 총회를 위해 무릎 끓고 기도하자

명성교회를 위하고 기도하는 많은 손길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결국 우리 집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내 집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자녀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2시간의 후끈한 순서를 마치고 나서는 나의 마음은 도착 때와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끝-

 

명성교회 작은 성도 박태엽 올림

010-7752-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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