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명성교회 문제와 개교회주의의 위기 - 장신대 김철홍 교수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19/10/31 [18:11]

[특별 기고] 명성교회 문제와 개교회주의의 위기 - 장신대 김철홍 교수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19/10/3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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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개(個)교회주의를 교회정치 원리로 확립한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가톨릭교회의 정치제도는 교황을 왕으로 하는 세속의 ‘전제군주제’(tyranny)에 해당한다. 가톨릭 성당과 성도들은 오늘 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성도들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그 자유와 권리는 개교회가 스스로 자치(自治), 즉 스스로 다스리는 것(autonomy)에서 나온다. 개교회는 자신에 관한 문제는 스스로 한 명의 군주(君主)가 되어 스스로 결정한다.

 

 

종교개혁은 ‘개교회’ 개념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개인’(個人)의 개념도 함께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등장하기도 전에, 시민혁명을 통해 독립적 ‘개인’인 근대적 시민이 등장할 길을 열어 주었다. 근대적 시민이 독립적 개인으로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자유를 갖고 있는 것과, 개교회가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권리와 자유를 갖는 것은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쌍둥이 정치원리다. 개교회는 마치 한 명의 개인처럼 자유와 권한을 갖고 있다. 때문에 개교회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오늘 날 자유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오늘 날, 개인과 개교회의 자유는 더욱 존중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개교회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담임목회자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일 것이다. 가톨릭처럼 상부의 권위가 개교회의 담임목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교회의 성도들이 담임목사를 결정할 ‘배타적’ 권한을 갖는다. 명성교회 문제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 개교회의 권한을 인정하자는 주장과 다양한 이유를 들어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명성교회의 문제를 세습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은 대체로 교회의 ‘공공성’(公共性)에 그 명분을 두고 있다. ‘공공신학’(Public Theology)에서는 공적 이익이 사적 이익에 우선한다고 말한다.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더 우선한다. 그러므로 명성교회는 공익을 위해 담임목사직의 승계를 포기하라는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으므로 누구든 얼마든지 그런 주장을 펼칠 수 있다. 명성교회가 담임목사를 선출하기 오래 전부터 그런 주장은 항상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명성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런 저런 이유로 ‘가능한 한 원로목사의 아들을 뽑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호소를 했다.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호소였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 결정권이 그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교회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겠다.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명성교회 문제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둘 중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할 것인가?”

 

 

첫 번째 선택지는 아쉽긴 하지만 개교회의 선택을 존중하고, 거기서 물러서는 것이다. 이것은 개교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개교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집단 내부의 모든 교회와 구성원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집단의 이익을 강요하면서, 끝까지 개교회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개교회주의를 포기하자는 것이다. 사실 공적신학을 주장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개교회주의를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주장처럼 개교회주의를 버리면 어떻게 될까? 특정 집단의 독재가 시작될 것이다. 특정 집단이 개교회의 권한에 앞으로 일일이 간섭하고 개입하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그것은 장로교 통합의 정치원리에 반(反)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집단주의가 보편화되면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년』에 묘사된 국가처럼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집단’이 ‘개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린 국가에서 집단주의는 더욱 더 위험하다. 이처럼 명성교회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정치철학적 함의(implication)를 갖고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정의와 불의,’ 혹은 ‘선과 악’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은 ‘철학적, 정치적 문맹’일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는 다양한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을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 도입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는 개교회주의 원칙을 만들어낸 종교 개혁가들 덕분이지, 공공신학자들 덕분이 아니다. 교회의 공공성이 최상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공성’의 명분으로 개교회의 배타적 권리를 무분별하게 침해하고 있다. 집단이 개인에게 불법적 린치를 가하는 것과 사실 다름이 없다. 개교회주의가 ‘교회의 공공성’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익의 이름으로 자유를 제한하려고 한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하면 앞으로 개교회의 독립성, 자유와 권리, 자율성은 폐기되고, 통합 교단은 특정 집단이 온 교회를 ‘감독하는’ 요상한 교단이 될 것이다. 교회의 공공성이 최고의 가치도 아니고, 개교회주의에 우선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가 공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고, 개교회주의는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온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교단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분들이 부디 이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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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합바로서라. 2019/11/03 [10:55] 수정 | 삭제
  • 통합에도 건전한 이성적 판단능력 있는 교수님이 계시네요. 난 예수 외에도 구원있다고 믿는 교수님들만 있는 줄 알았어요. 감신 한신 연신 에는 예수 이름에 구원있다고 믿는 교수님들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