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에 영광 -주승중 목사님께

주안징로교회 주승중 목사님께 올립니다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19/11/15 [18:23]

가문에 영광 -주승중 목사님께

주안징로교회 주승중 목사님께 올립니다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19/11/15 [18:23]

 

▲     ©예장통합뉴스

 

가문의 영광

 

-주안장로교회 주승중 목사님께 올립니다-

『가문의 영광』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조금 오래된 영화인데 호남의 조폭 3대 가문이 좋은 혈통을 얻기 위해 서울대 출신 벤쳐 CEO를 사위로 삼아가는 내용으로 재미있습니다. 4편까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문의 전통을 지키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동서고문을 막론할 겁니다.

그만큼 가문의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우리 교회 원로목사님도 안동김씨 가문이라는 것은 은근히 내비치십니다. 왜죠?

가문을, 집안을 욕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그런 소망이 있으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명문가가 있습니다.

 특히 믿음의 가문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빛나는 신앙의 가문을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경우가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죄송하지만 바로 주안장로교회 주승중 목사님의 일입니다.

주기철 목사님., 

그냥 불러만 봐도 저희는 가슴이 설레고 뜨거워 집니다.  

신앙의 학식이 높아서 일까요? 큰 교회를 시무했던 경륜이 있어서요? 아닙니다. 믿음에 목숨을 거셨기 때문입니다. 싸울 대상은 분명했고 명확했습니다.

 신사참배라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위에 목사님은 목숨을 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는, 반하는 것에 저항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저항은 빛이 나고 영원히 사셨습니다.

 올바른 순교였기 때문이죠.

 

주안장로교회 주승중목사님. 

 

바로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 되십니다. 그런 주목사님께서 지난 11월 10일 주일설교에서 설교의 대부분을 명성교회에 할애 언급했다는 내용을 듣고 아쉬움과 함께 절망과 무거움까지 느꼈습니다.

여기서 목사님의 설교내용을 일일이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목회자의 영역을 침범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을뿐더러 가치도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냥 허공에 뜬, 뿌리도 없는 요설같이 들렸음에 민망하기만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교인들에게 이런 설교를 하신 의미가 무엇이십니까?

남의 교회를 헐뜯으므로 교인들이 시원하다고 하십디까.

주안장로교회 교인들에게 명성교회 일이 목숨 걸만한 일입니까?

 왜 의식화되고 볼 품 없는, 시대착오적 이론으로만 무장하신 일부 목사님, 교수님들의 기울어진 시각을 교인들에게 강요하십니까? 

그 분들의 치졸한 위선의 정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 

모르 십니까? 

작금의 모습이 정녕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던 분들의 실상입니까, 남을 정죄할 여유가 과연 있습니까? 부끄럽지 않습니까?  

너무나 죄송합니다만 그분들의 위선과 이중성, 후안무치를 보면 사이코패스 음험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전율까지 느낍니다. 무서운 일이죠.

 

다시 묻겠습니다. 

교인들이 왜 이런 말씀을 들어야 하죠? 일주일 내내 세상의 거치름에 지친 삶을 사신 교인들이 아닙니까

그런 교인들을 향해 안식년 지내시고 오신 목사님 첫 일성이 남의 교회 헐뜯는 것이었습니다. 

안식년이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에는 토지에도 안식년을 주었습니다. 열매 맺느라 지친 토지를 쉬게 하므로 더  큰

 풍성함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까?

안식 덕분에 토지는 새로운 활력으로 새로운 풍성함을 시작합니다.

 하물며 자연을 다스리리는 인간에게 안식이란 더 할 나위가 없이 소중하지요. 지난 일은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새로운 지경을 향해 달려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지친 영혼을 풍요케 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기회라고 저는 생각하고 싶은데요, 아닙니까? 

 

그나마 ‘주안장로교회가 살아있다’ 고 느낀 것은 목사님의 설교 내용에 대해 어느 교인분이 항의하는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고뇌 속에 결정한 총회의 총의를 무시하십니까?

명성교회만 살리자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교단 질서를 어지럽혔다고요?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목사님께서 지금 교단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 모르십니까? 

정말 일차원적이며 평면적 사고방식, 참 경이롭습니다.

굳이 세습이라고 몰아붙이는 우리교회의 오늘의 예배 모습을 보셨습니까? 

목회를 맡으신 주안장로교회의 현황은 어떠십니까? 저는 전임 나겸일 목사님 시무시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은혜로 충만했던 주안장로교회였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어떠십니까? 후임 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 정말 조그마한 미안함이라도 없으십니까?

일전에 어느 분이 주안장로교회 저녁예배 모습을 보내왔습니다. 

놀랐습니다. 그 넓은 예배당에 외로이 듬성듬성 앉아 있는 300-400명으로 추산되는 초라한 교인들.

같은 시간, 1만 명에 육박해 은혜를 받는 저희 교회 저녁 예배 모습과 비견했더군요.

 자랑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민망했습니다. 가슴 아팠습니다. 저희교회와 함께 했던, 엄청난 은혜가 임재했던 주안장로교회인데 왜 이 지경이 되었나.

형제교회의 쇠퇴에 가슴 아팠을 뿐입니다.

 

그 충만함과 은혜는 어디로 갔습니까?  300-400명외 양떼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왜 찾지 않으십니까

이 정도시면 과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목사님께서는 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남의 교회를 비판하셨으면 그 비판이 합당하다는 것을 보여주셔야지요.

제 부족한 소견으로는 이제라도 남의 교회 일 보다 자신이 맡은 양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라고 보는데요. 어떠십니까? 

눈앞의 현실이 이토록 절박한데도 굳이 외면하셔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아니라고 손사래 치시면 위로가 됩니까?  

아닙니다.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인간의 덕목의 하나로 수치심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무모함으로 연결되고 이는 결국 자신을 해하게 됩니다. 명성교회와 진검승부를 진정 원하십니까? 그러시려면 저희들을 좀 더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목사님. 목사님께서 과연 저희 명성교회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저희는 원로목사님과 40년 광야의 기적을 보고 살아온 교인들이고 그 전승이 후임 목사님에게 흘러가는 은혜의 교회입니다. 

 

그 원천을 나름 평신도로서 생각해 봅니다.

 지도자가 올바르면 그 구성원이 흥합니다. 이런 면에서 저희들은 행복합니다. 원로목사님은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엄격하시고 절약하지만 남에게는 관대하시고 무한정 베푸십니다.

그래서 국가도 할 수 없어 저희에게 맡겨졌던 에티오피아 병원(MCM)이 나왔고, 기독교 교도소가 탄생되었으며, 1000여명의 선교사를 도왔고, 

선교사님이 만드셨으나 경영난으로 폐업직전의 성소병원을 인수하여 지금은 경북 제일의 병원으로 살렸고, 각 지방에 가난한 목회자 자녀들을 위해 전국에 장학관 6군데를 세우셨습니다.

 동남아시아 각 곳에 선교센터를 세웠고 필리핀에는 선교사 자녀를 위한 학교까지 인수해 오늘에 왔습니다. 이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저희들이 이것을 자랑이라고 한 줄 압니까?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저희 교회에 맡겼을까요? 그때 목사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창백한 지성의 틀에 갇힌 채 무엇을 하셨습니까

 

좀 더 계속하겠습니다. 

원로목사님의 근검절약은 모든 교인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베푸시는 모임에 가면 내어 놓은 음식이 얼마나 질박하고 소박한지 아십니까, 감자, 옥수수, 고구마, 달걀 삶은 것, 김치 부침개, 콩나물 죽이 나옵니다. 우리들은 이런 류의 육의 양식에 너무 익숙합니다. 즐겁고 맛있습니다.

재래시장 메니아이신 원로목사님은 어디를 가시든 반드시 재래시장에 들러 싱싱한 고등어, 나물 과일등을 사셔서 동행한 교인들에게 안깁니다. 저희 교인들은 맨날 원로목사님의 절약하라는 잔소리(?)를 듣고 삽니다.

화장실 물을 자주 내리지 마라, 왜 그렇게 샤워를 자주 하느냐, 호텔가서도 수건은 한 장만 써라, 속옷도 너무 자주 갈아입지 마라, 

 원로목사님의 이런 소소한 절약 철학에 교인들은 웃지만 이러한 절약과 근검에 동화되어 갑니다. 이런 목사님을 촌스럽다고 비웃는 교인 한사람도 없습니다. 아니 촌스러우면 어떻습니까. 

그 절약으로 원로목사님은 남에게는 풍성하게 베푸신데요. 교인들은 이런 모습 하나하나를 실천에 옮기려고 애를 씁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무섭도록 아끼시지만 베푸시는 또 하나의 백미의 절정은 저희교회 명품인 추수감사절 소머리 국밥입니다. 혹시 아십니까?

갓 도축한 상싱한 한우 10여 마리와 몇 톤 무우를 며칠을 밤새 우려낸 땟깔 좋은 진국 국밥,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이런 국밥 먹을 수 없죠. 

누구나 드실 수 있어 인근 주민들도 함께 모여 드십니다. 

 

마음껏. 이렇게 하루에 6만여 그릇이 나갑니다.

 이 풍성한 소머리국밥을 들어야 한해가 간다고 우리 교인들은 즐깁니다. 

누구든지 오라 하여 6만 여 명을 배부르게 먹이는 잔치.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런 일을 원로목사님은 해 치우십니다. 

혹시 토요새벽기도 때 강단을 가득 채운 어린이들을 보셨습니까? 어린이들이 강단에 앉아요? 그 새벽에? 

하지만 앉아 있습니다. 예배 내내. 기적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이런 기적을 저희들은 40여 년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명성교회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이르면 원로목사님의 교인 신앙훈련은 매섭습니다. 

매번 ‘운동선수에게도 운동 근육이 있듯이 교인은 신앙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하십니다.

 교회, 말씀, 기도중심의 생활로 신앙의 근육을 키우라고 하십니다. 교회와 교인을 저수지와 물고기로 비유하십니다.

 끝까지 남는 자는 교회가 지켜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지키는 것이 교인의 생명과 같은 일이라는 것,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바로를 이기고 홍해를 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저희에겐 오직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전혀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광야의 200만을 시원하게 하시기도 하고 따뜻하게도 하신 하나님의 능력, 

저희 교인들에게 ‘오직 이런 하나님의 능력만 보라’ 고 하십니다. 

대신 사람은 항상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모세를 배반한 자는 형 아론, 누나 미리암, 자신이 세운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람에 치우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속고 인간에 배반당하고 생활에 지친 교인들에게는 생명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이런 말씀을 먹고 40년을 함께 했습니다.

목사님, 

이런 말이 진심이 아니길 기도하며 묻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큰 교회의 목회 자리를 자리물림으로 이어주고 받으신다는 데, 아니죠? 아니라는 것, 믿어도 되죠? 

아니면 혹시 혹시 말입니다 저희 명성교회에 이렇게 집착하시는 것은 혹시 흑심 품은 어떤 교수님 일파가 접수를 노리는 거 아니죠? 설마~~.

누차 이야기 드렸지만 저희는 흔적이 있는, 눈물이 있는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배우고 안배우고는 필요 없습니다. 전임 목사님의 질박한 목회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어받아 우리 교인들의 영혼에 상처내지 않으신 분이면 되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저희 교인들은 목사님 닮아 정말 질박하다는 것, 목사님께서도 그런 우리 교인들이 감사하시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하자면 따라서 하고 성경공부하자면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주는 교인들이 감사하다고 합니다. 

나는 이제 복 받을 만큼 받았으니까 교인들의 복받는 것이 최우선이다 라고 하십니다. 

저흰 그렇게 감사를 주고받으며, 감사만 생각하고 40년을 여기까지 따라 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지도 않는 복을 주시던데요?

이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저희는 후임목사님을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왜 목사님들의 비위를 거스리는 짓일까요? 

그것이 그렇게 목숨 걸고 헐뜯고 물어 뜯을 일이 됩니까? 

 

교단 질서 훼손? 장로교 교리 위배? 

오히려 목사님께서 저지르고 있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좀 시각을 바꿔 보세요. 고속도로도 곡선도 만들고 회전도 만들어 직선의 무료함을 완화시킵니다. 너무 앞만 보다보면 다른 것은 안보입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더 큰 광경을 볼 수 있으실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저는 가끔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그 시대의 제사장들이나 유대인들이 어쩌면 행복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왜냐구요? 그 기적을 생생히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다 함을 느끼고 살았기 때문이죠. 말은 할 수 없었겠지만.

어쩌면 이제 교회사에 영영 나타날 수 없는 한 산골 출신의 원로목사님과 40년을 보낸 저희들은 그래서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품성을, 생을 따르려 했던 눈물의 목회자를 늘 접하고 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희에게는 남은 기간이 더 아쉽고 소중합니다.

목사님들도 이런 저희 원로목사님과 같은 시대 목회의 반열에 섰다는 것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저희가 적입니까? 왜 이렇게 흠집을 내고 상처를 내어야하죠?

아프리카 들개 리카온은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협업하며 사냥몰이를 하므로 자신보다 몇 배 되는 동물도 포획하는 평원의 포식자중 최강자의 하나로 군림합니다. 

이단, 동성애, 이슬람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하나하나는 리카온같이 너무 약합니다. 

우리도 협업해야 합니다, 지금 형제를 물어뜯어 죽이려 할 만큼 우리 목회 환경이 한가한가요

목사님 간청드립니다. 

주기철 목사님을 생각하며 부탁드립니다.

이제 벗어나십시오. 목사님께서는 아류 목사님들과는 다르셔야죠. 왜요? 가문이 있잖습니까? 

가문의 영광을 생각하셔야죠. 초라하고 허망한 주장에서 목사님은 벗어나셔야 합니다. 

선조의 순교의 피를 혼탁시키는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읽고 기다리십시오. 

 

목사님의 설교내용은 무시하겠습니다. 

일일이 거론하기 조차 민망해서요. 그 정도의 부끄러움에 머무시는 것이 좋습니다.

느끼실 때 행하시면 아무리 늦더라도 늦은 게 아닙니다.

 지금 평신도 눈으로 봐도 작금의 저희 교회에 비수를 던지는 아류의 단체, 목사 교수님들의 만행을 보면 적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성교회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더 반석같이 굳어 질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멈추십시오. 얼마나 더 부끄러움을 당하셔야 느끼실까요

저희교회 일, 지켜 봐 주십시오 

저희들은 비빔밥 같은 원로목사님의 은혜의 말씀(이것은 목사님께서 직접 말하신 것 입니다)과 담임목사님의 정갈하고 깔끔한 생수의 말씀을 번갈아 들면서 더 충만한 영적 살이 오르고 있습니다.

 

든든히 서가는 교회를 보면 박수쳐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다른 분도 아니고 영광스러운 가문의 후예의 품격이 아닐까요? 다른 목사님은 몰라도.

명성교회는 이미 시끄러운 세상의 잡음을 버리고 항구를 출항했고 이제 더 너른 은혜의 바다에 잠겨 항해할 것입니다.

 그러니 발 그만 동동 구르시고 동참하십시요. 

목사님의 자리는 비워 두겠습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함께 하셔야 합니다.

 

명성교회의 부족하고 

작은 성도 박태엽이 올립니다. 201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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