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지 전투와 송양지인(宋襄之仁)  -장신대교수님들께 올립니다- (명성교회의 아주 작은 교인 박태엽 올림)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19/12/10 [08:58]

발지 전투와 송양지인(宋襄之仁)  -장신대교수님들께 올립니다- (명성교회의 아주 작은 교인 박태엽 올림)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19/12/10 [08:58]

 

▲     © 예장통합뉴스



 

발지 전투와 송양지인(宋襄之仁)           19.11.29

-장신대교수님들께 올립니다-

싸움에는 해서는 안 될 싸움이 있고, 일단 싸움을 벌이면 승기를 잘 잡아야 합니다.

그동안 저희 명성교회를 향해 던져지는 일련의 비수(匕首)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고 이와 비견되는 동서양의 전투가 생각났습니다.

 

첫 번째 경우입니다. 해서는 안 될 싸움을 한 경우입니다.

바로 2차 대전시 독일의 패망을 앞당긴 벌지전투가 이 경우입니다. 히틀러가 펼친 대반격작전으로 연합군들은 이를 벌지전투(Battle of the Bulge) 라고 불렀으며 『발지전투』라는 제목으로 영화로도 상영되었지요.

2차 대전 종말 즈음 사면초가에 둘러싸인 히틀러는 회심의 대 반격작전을 벌입니다. 혹한기인 1944년 12월 16일 독일이 자랑하는 전차군단으로 기습 공격을 개시합니다. 

잠시 연합군에게 타격을 주었지만 겨우 한 달 후인 1945년 1월 27일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맙니다. 독일의 전 전투력을 쏟고도 패배한 히틀러는 3달 뒤인 1945년 4월 30일 권총자살로 생을 마치고 독일은 패망하게 됩니다.

전쟁에 대한 문외한인지라, 논자에 따라서는 생각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해서는 안 될 전쟁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독일의 패망이 눈앞까지 왔었음에도 전 전투력을 동원하여 시도한 단말마적 저항은 결국 패망을 앞당길 뿐이었습니다.

불필요한 피와 희생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지요.

이 전투를 생각하면서 저는 왜 장신대학은 ‘해서는 안 될 싸움을 자초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바로 예정연에 대해 장신대학이 벌인 이상한 싸움때문입니다.

그동안 예정연은 『명성교회와 교단을 살려야 한다』는 정체절명의 사명으로 명성교회에 대한 장신대의 지극히 편향되고 왜곡된 시선에 많은 우려를 표명해 왔습니다.

그런 중 예정연에서는 「장신대는 본연의 자세를 잃으므로 지원 학생들이 해마다 줄어들어 취약한 재정으로 문을 닫게 될 것이다」는 것과「동성애 바람으로 장신대는 폐교할 것이다」 라는 내용의 기사를 발표한 것으로 압니다.

이에 장신대학은 예정연 대표목사님에게 「정정 보도 요구와 불이행시 언론중재위원회 제소조치」를 하신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합니다.

장신대의 심각한 명예훼손인 만큼 이를 정정보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예정연 대표목사님은 여기에 대한 입장 표명을 했고 추후 어디까지 연결될 것 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근거없는 낭설이었다면 문제는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소동을 벌이기 전에 ‘왜 예정연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왜 이런 주장에 장신대는 민감해야 하는지’ 에 대해서 장신대측은 심각한 고민을 먼저 했어야 합니다.

신중한 방안을 택하셔야 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정연의 주장이 잘못되었다’ 하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 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예정연의 주장이 제소까지 들먹일 정도로 근거가 없는 것 입니까?

장신대측은 여기에 대해 여러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셨더군요.

사실이라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들이 왜 이렇게 공허하게만 들리는지요.

더하여 장신대학의 의연한 대처가 아쉽더군요. 

싸울 필요가 없는 싸움을 거셨다는 생각 때문이죠.

이러한 예정연의 주장은 왜 나왔을까요

예정연의 주장대로라면 총장님께서는 예정연 대표목사님의 면담을 수차 거부해 왔더군요.

왜 그랬습니까

반면 명성교회 일에 극렬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목사님에게는 강연의 기회까지 주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왜 학생들이 공정하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하십니까? 

 편향된 사고의 목회자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한국교회의 앞일을 생각하는 평신도로서는 심한 자괴감과 절망이 앞섭니다.

왜 면담을 거부하셨습니까? 정확한 입장을 주시기 바랍니다.

일전의 저희교회 주일예배에 초청된 강사 목사님께서는 균형과 조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이는 세상은 물론 교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후학들을 책임져야하는 교수님들의 경우는요.

학생들에게 경도되고 편향된 사고를 주입한다는 것, 그게 바로 교수님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반대 입장의 견해도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는 균형있는 사고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는 최소한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가르치는 자의 사명입니다. 아니 소명입니다.

도대체 학교 현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런 내용을 가지고 이런 소동을 피우셨습니까?

짠하기도 합니다. 장신대학 뿐 아니라 명문대학도 어려움은 겪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학교 위기에 대한 근거를 이러한 어리숙한 주장에 두지는 않습니다,

이게 정말 교수님들의 논리가 맞습니까?

솔직히 말입니다 교수님들.

예정연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행동으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학생들의 감소가 사실 있었다면 그 원인부터 과감히 궤도수정하면 됩니다.

올바른 가치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균형과 조화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자신들이 세운 정의가 하나님 앞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시면 우월한 대책이 떠오르실 텐데요. 아닙니까?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교수님들의 아집과 욕심과 시기심 말입니다.

왜 장신대가 폐교 운운하는 위기까지 왔습니까?

장신대는 그동안 수많은 명품 목회자를 키워내신 신학의 명문교입니다.

 이런 학교에 후학을 키우는 위치에 계신다는 것, 자체가 은혜 아닙니까? 다른 것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이것만 보람으로 아시면 됩니다.

그런데 저희 평신도들의 눈으로 심히 걱정되는 일부 교수님들의 지나친 편향적 정치성,

총회와 교단을 좌지우지하려는 허무맹랑한 망상. 그게 가능합디까

도대체 교수님들에게 교단의 의미는 뭡니까? 개교회 교인들의 예배권의 의미는 뭡니까?

진실 앞에 굳이 눈을 감으려는 우매함.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발지전투의 형상이 떠오릅니다. 결국 자신들의 패망만 앞당겨지지 않겠습니까

원하옵 건데 빨리 교수님들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단체스포츠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축구건, 농구건, 배구건. 선수가 자신의 위치를 놓치면 팀은 자멸하고 맙니다.

전투 때도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키는 지휘관은 전면전을 해야 할지 기습전을 해야 할지.

교란전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판단합니다.

발지전투같이 불필요한 전투는 피한다는 거죠. 최대한 희생을 줄인다는 겁니다.

두 번째 승기를 놓치면 파멸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해당되는 古事로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시대 송나라는 꽤 강력한 제후국으로 제후는 양공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양공은 패권을 두고 초나라와 일전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홍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고 먼저 도착한 송 양공은 진을 치고 기다렸습니다.

늦게 도착한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기 시작하자 장수들은 공격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양공은 ‘상대가 준비를 하기 전에 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 하여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강을 건넌 초나라 군대는 전열을 가다듬고 강력한 힘으로 송나라 군대를 몰살시켰고 이때 양공을 심한 부상을 입고 도망가다 목숨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베푸는 어짊을 비웃어 송양지인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지금 강력한 힘으로 渡江하고 있는 이단에, 동성애에, 이슬람에 대처하는 장신대의 경우 혹시 송양지인을 베풀고나 있지 않는지요. 

무슨 전략을 가지고 있으십니까.

그들이 이미 강을 건너 강력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데도

이에 맞설 장신대의 전략과 전술은 과연 무엇입니까?

왜 강력한 응징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십니까.

명성교회 일에는 만사 제치고 학생들을 학점으로 매수 동원하여 행동으로 열을 내셨던 교수님들이 아니셨습니까

명성교회가 이단 동성애보다 더 멸살해야 할 상대였습니까?

교수님들의 응징 상대는 정말 누굽니까? 향하는 총구가 어딥니까? 형제의 등 인가요?

분명히 밝히셔야 합니다.

 일부 교수님들의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왜 그렇게 관대하십니까, 교권이라는 권리 때문이십니까

그렇다면 그 교수님은 교수님으로서 의무를 다하셨습니까

권리보다 의무가 얼마나 엄혹한지 아십니까?

같은 형제교회에는 그토록 냉혹하게 잣대를 들이대시던 교수님들이

강을 건너 자신을 몰살시키려는 적에게는 왜 이토록 관대하십니까. 군자셔서 그럽니까?

장신대는 ‘동성애에 관대하다’는 예정연 목사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장황한 설명을 붙이시고 강연 내용까지 첨부하셨습니다. 그것도 작년(2018년) 실적만 있더군요.

그러면 의무를 다 하신 겁니까?

강연 몇 번 그것도 작년에 한 해서요. 그렇다면 올해는요? 그것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셨나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예정연 목사님들이 주장하신 장신대의 위기, 부정하시겠습니까? 왜 폐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을까요.

 한가한 상황이 절대 아닙니다.

장신대출신 목사님들이 바보십니까? 모교가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생각하십니까

모교를 걱정하는 충정을 내용증명이나 보내 제재하신다 할 정도로 한가하십니까.

왜 총장님께서는 이런 주장을 하시는 목사님과 허심탄회한 대화까지 거부하십니까

제가 볼 땐 이러한 내용증명, 정말 바보같이 싸움을 건 장신대적 발지 전투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형제의 등에 비수를 꽂는 데만 집요하십니까

명성교회 수습안은 교수님들 보다 현장목회의 어려움을 더 사려깊고 진지하게 판단하시는 많은 총대님들이 고뇌에 찬 결심이었습니다.

교회와 총회를 함께 살리자는 것이었습니다. 

노회도 총회의 수습안을 받아들이고 진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또 임 모 교수님이라는 분은 쓰레기같이 너덜거리는 논리로 명성교회 세습을 주장했더군요.

참 가관이십디다.

이런 허접스런 주장, 시냇가에 가서 들은 귀를 물로 씻고 싶은 심정입니다.

결정까지는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승복의 미덕은 왜 잃으셨습니까

누차 말씀드리지만 명성교회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일저녁찬양예배, 삼일기도회에도 구름같이 몰려들어 은혜받는 성도들의 현장을 제발 한번이라도 확인하세요. 

그러면 헛꿈은 접게 될 것입니다

단말마로 명을 당기는 우를 범할 생각 멀리멀리 달아날 것입니다.

제발 교수님들,

좀 더 의연해 주시길 바랍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표지판을 세워주십시오

발지전투에서 독일군은 영어에 능통한 병사, 장교들을 선발하여 연합군으로 위장시켜 작전에 투입합니다. 

도로 표지판을 바꾸고 능숙한 영어로 연합군을 속여 독일군이 기다리는 함정으로 몰아 몰살시킵니다.

 혹시 교수님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런 위장된 적의 역할을 하고 있으시지나 않으신지요.

표지판을 바꾸고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는 역할 말입니다.

한번 가슴에 손을 대고 생각해 보시면 어떠십니까.

자신이 세운 세습의 폐해라는 개념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는 지금의 명성교회의 차고 넘치는 은혜의 예배와 찬양을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부끄러우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빨리 회군하십시오. 

발버둥 치며 진격하실수록 댓가는 파고드는 창검의 응징뿐입니다.

무엇보다 발지전투의 우, 송양지인의 조롱을 더 이상 당하시지는 않으셔야 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줄 압니다.

다만 오염된 자신의 의식을 끝까지 허위로 포장하려는 일부 정치교수님들이 문제지요.

참 안타깝지요

저희는 하루빨리 장신대가 신학의 명문대학으로 본연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지 말아야 할 싸움을 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승기의 때를 놓치고 패주하는 조롱은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를 할 수 있는 양심을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교수님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2019.11.29    명성교회의 아주 작은 교인 박태엽이 올립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