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코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수갑 목사, 예정연 공동대표)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20/01/15 [21:19]

결단코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수갑 목사, 예정연 공동대표)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20/01/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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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코 거듭나지 아니하면,,,,,,, 

  

聖經은 舊約과 新約으로 나눈다

 

구약을 律法이라고 하며, 그 법을 통해서 [타인을 보는 법]을 가르친다

 

이에 속한 부류가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등등일 것이다

  

이에 비해 신약을 福音이라고 하며, 복음은 [자신을 보는 법]을 가르친다

 이에 속한 부류들이 자신도 용서받아야 할 죄인인 것을 깨닫는 자들일 

 것이다.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을 보는 것과 자기를 보는 것의 觀點일 뿐이다. 

 

기독교의 기초를 세운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보았을까 

이전 율법에 메여 살 때에는, 나는 율법을 온전히 지켰고 

 자기 의를 자랑 질을 해되던 사울의 삶이 아니었던가! (빌 3장)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복음을 깨닫고 예수에게 사로잡힐 때 

 그가 깨달은 말은 무엇인가!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

 ◆ 나는 만삭되지 못한 자라는 “자기 자신의 꼬라지를 본 것”이다.  

 

이런 깊은 성찰 속에 자기 자신을 깨달은 바울은  

자기같이 못난 자를 불러주신 하나님 앞에, 바울은 그의 일생 전부를, 

 생명의 위협에도 목숨을 걸고 예수의 복음과 그의 나라를 위해 살았다.  

  

사람은 자기가 보는 觀點이 있다

 律法的 先入見과 福音的 先入見 일 것이다.

 

◆ 律法的  先入見에 사로잡힌  자는 법에 어긋나면  언제나 법으로 정죄하나  

◆ 福音的 先入見에 사로잡힌 자는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이해와 용서와 사랑과 칭찬과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 주는 자이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을 통해 자신을 보고 울며,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해 하며, 

 자신의 한계 때문에 몸부림쳐 본 사람만이 애통할 수 있다고,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법을 주셨을까?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보고 울게 하기 위함 아닌가!

 그래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며, 

 자신의 처지를 보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데 있는 것 아닐까!

 죄를 보고 울 때 예수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축복하신다.

 바울은 말하기를 “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롬3;10)

  

죤 부룩만(John Brockman)이 쓴 책 가운데  

 ' 과거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품 ' 이라는 책이 있다.

 (The Greatest Inventions of the past 2.000years)

 과거 2.000년 동안 발명한 것들이 인류생활을 바꾸어 놓은 것을 

 지적한 책이다. 

 전기를 발명하지 못하였으면 오늘 우리의 생활은 어떠하였을까!

 비행기, 컴퓨터, 망원경, 현미경, 인쇄기, 텔레비전, 전구, 배, 자동차

 심지어 민주주의도 위대한 발견 중에 하나 아닐까! 

 지난 2.000년 동안 세상을 변화시킨 발명품들이 참 많이 있다. 

  

더그라스 라시코프(Douglas Rushkoff) 라는 교수는

 ' 가상문화/ Imaginary Culture) '라는 학문을 강의하고 있는데,  

 그는 말하길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놀라운 발명품은 지우개라고 말했다

 

잘못된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지우개의 발명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만약 지우개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과학도 역사도 도덕도 제자리걸음을 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은 

 사람들의 죄를 지우는 능력과 효력이 있다 

 

어떤 유형의 죄인일찌래도 그의 죄를 지우는 능력이 있다.

 그 지우개가 혹 예수님 아닐까! 아니면 예수님이 지우개일까?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겨주신 그 지우개 말이다. 

  

하나님을 떠난 이래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이다.

 성경은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우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듯이, 

 온 인류가 율법으로 자기의 죄를 보고 용서를 구하면, 복음은 우리의 

 

만가지 죄를 지우듯 지우시고, 씻어내듯 씻어내어 주시는 분이 

 예수 아닐까!

 나는 그 예수의 별명을 온 인류를 향한 지우개라고 부르고 싶다.

  

殉敎라는 것이 무엇일까

 독생자 예수까지도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깨닫고 체험한 자만

 행할 수 있는 기독교인의 최고의 至高至純이요 자기 信仰告白아닐까!  

 이 위로를  깨달은 자들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며. 예수의 이름을 자랑하며세상에서는 영원히 변치 아니할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 ! 

 옛말에 “맛은 맛을 본 자 만이 안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인간의 문화생활로 인해 누리는 행복을 

성경은 [바이오스 / Bios]라고 한다. 

 

◆ [Bios]는 기본적으로 [목숨]을 의미한다.  이것은 세상 문화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가리켜 [Bios]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Bios]만으로 인생의 행복을 만족해하며 살아가지 

    못할 때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이에 비해 성경은 영적인 행복도 있음을 알려준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체험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영적 요소를 가진 행복을 구하는 사람을 향해서 

 성경은 [ 조에 /ζωη ]라고 말한다. 

  

[조에 / ζωη ]는 [진짜 생명]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생명의 충족감이나 생명이 넘친다는 것,,,,  

 생명이 영원히 존속된다는 것에는 모두 [조에]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이 [조에 /ζωη ]의 (생명) 충족감을 갖는 사람은, 

 환경과 위치와 소유를 초월하는 행복을 누린다. 

 소유와 지위를 초월하여 행복하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할 수 있는 행복을 예수는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신다. 

  

똑같은 인간을 놓고 

 ◆ 예수는 세상적인 행복,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향해서 [Bios]라고 말씀하시고,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을 가리켜서는  

   [쏘마 / σωμα]라고 말씀하셨다. 

 ◆ 이 [쏘마 / σωμα]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쏘마 / σωμα]의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너희가 만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요3:5)

  

예수의 福音은 물(水)이요, 空氣요, 바람(風)이요, 詩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것으로, 지난날의 나는 죽고 

 오직 예수  십자가의 흔적만을 남긴 것으로 자랑삼은 사람들  아닌가!

 

성경은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못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천하 못난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사용하셨는가를 기록한 册임을 잊지 말자.

 우리가 사는 세상과 교회와 나 자신 안에 예수의 복음인 

 [조에 / ζωη ]와  [쏘마 / σωμα]로 가득 찼으면 참 좋겠다.  

                                                      “예수의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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