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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식 목사의 왜곡된 신앙 사상을 비판한다.

신권이냐 인권이냐 ? 순천중앙교회의 선택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20/06/15 [07:38]

홍인식 목사의 왜곡된 신앙 사상을 비판한다.

신권이냐 인권이냐 ? 순천중앙교회의 선택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20/06/15 [07:38]

▲     ©예장통합뉴스

        (순천중앙교회 홍인식 목사)

           

▲ 류승남 목사     ©예장통합뉴스

             

               순천중앙교회 홍인식 목사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성소수자(Queer)를 옹호하는 
   홍인식 목사의 왜곡된 신학사상에 대한 성경적 비판


             글쓴이 : 류승남 목사(제주노회 .신촌교회)

 

 홍인식 목사의 섬김과 사랑의 목회는 존경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과 교훈이 온통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성경과 사회와 교회를 보게 되므로 자본주의의 자유시장경제를 우상으로 규정하였고, 다양성을 강조하다 보니 절대진리를 부정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왜곡, 본 교단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一. 들어가는 말

 

  홍인식 목사의 약력을 보면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5년 파라과이로 이민, 1984년 파라과이 아순시온 국립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 1989년 장로회 신학대학원 졸업, 1991년 서울노회(예장통합)에서 목사안수. 파라과이 선교사 및 아르헨티나 선교사, 1999년 아르헨티나 신학대학교(ISEDET)에서 호세미게스 보니노(Jose Miguez Bonino)박사의 지도로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의 모색'이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대학에서 해방신학의 전문가로서 가르치기도 하였고 8개국의 영주권을 가지고 있고, 많은 저술활동을 통하여 해방신학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러한 홍목사의 삶이 기독교성지라고 할 수 있는 순천의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형교회인 순천중앙교회 목사로 2016년 부임하였습니다. 그리고 NCCK인권센터 4대 이사장으로 2020년 5월에 취임하였습니다.


  홍목사는 활발한 저술활동과 세미나에서 해방신학을 소개하고 있으며, 주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목사로서 낮아지심과 섬김을 통한 목회,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활동과 섬김이 지 교회와 지역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음이 인터넷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것 만큼 홍목사는 오히려 한국교회의 신앙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으며, 교회를 파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홍목사의 글이나 가르침을 보면 다음과 같이 왜곡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성경과 교회를 보고 사회를 보게 되므로 왜곡된 사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신자본주의의 자유시장경제를 우상으로 규정,
     2) 절대진리를 부정,
     3)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왜곡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

 
二. 홍인식 목사의 신앙관의 문제

 

1.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사회를 보게 되므로 나타나는 문제

1) 홍인식 목사는 신자본주의의 자유지장경제를 우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홍목사는 해방신학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섬김을 본받아 섬김의 목회를 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신학사상으로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세상이 악하고 인간의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놓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물질이나 현상을 더 중시하며 인간의 죄의 본성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에 신자본주의의 문제는 자유 시장경제이고 아무리 구제하더라도 자유 시장경제는 빈부격차를 줄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우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2019년 11월 11일, 아시아농촌선교회 창립준비위원회서 강의한 내용을 보면  “신자본주의 정책으로 인류의 상당수가 가난으로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시장이 우상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종교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시장 혹은 신자유주의 정책은 어느 누구도 비판하거나 그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며 “시장이 우상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종교문제”라고 주장했다.

홍 목사는 “어떤 사람이 수십억을 기부 행위를 했다고 해서 돈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 같은 대기업도 기부행위를 많이 한다.”며 “우리 자체는 이미 시장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장은 극심한 빈부격차를 먹이로 존재하고 있다. 시장이라는 우상이 존재하는 한 극한 빈부격차와 비인간화 그리고 생태계 파괴는 계속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자본주의사회에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악한 기업주도 있고 악한 노동자도 있고, 때로는 잘못된 정책으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국가가 통제한다고 하지만 어려운 일이 한 두가지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서 홍목사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죄성과, 인간의 한계입니다. 성경에 보더라도 아무리 훌륭한 카페시노(가난한 촌사람) 다윗이 다스리는 왕국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충만한 초대교회에서도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 빠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도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본주의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시장경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주권을 떠난 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임을 생각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과 사회적 의무를 감당하지 못하므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홍목사의 주장대로 라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 했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제도에서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공산주의는 역사적으로 완전히 실패하였고 사회주의제도 역시 실패하였습니다.    중국의 수정된 공산주의 체제나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를 보면 빈부 격차는 미국 보다 더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국의 경우는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독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는 김정은을 위한 왕국으로서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빈곤과 질별과 억압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신자본주의의 자유시장경제에 의하여 세계 11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삶의 질은 매우 좋아졌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했던 베네수엘라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고 삶의 질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홍 목사는 구약의 카페시노(가난한 촌사람)으로  아모스와 엘리사, 미가, 사무엘, 다윗을 꼽았으며, 신약에서 대표적인 카페시노로 예수님을 꼽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를 보고 세상을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홍목사는 가진자, 부자, 대기업, 대형교회를 맘몬으로 규정하여 부정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카페시노(가난한 촌사람)를 긍정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낮아지심과 섬김의 삶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결코 가난한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보다 가난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자들 중에도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부요한 자들 중에서 겸손한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유무를 떠나서 마음이 가난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본주의를 우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자본주의를 정죄하거나 시장경체를 우상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자,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댜,

   (양과 염소의 비유, 마25:31-46)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자유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층성스럽게 일하여 다섯 달란트 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들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혹시나 손해 볼까 하여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 올 때 책망을 들었고 있는 것 까지 빼앗기고 다섯 달란트 남긴자에게 주인의 손에 의하여 뺏기게 됩니다.

 

  달란트 비유가 자본주의 원리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이웃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수정 자본주의는 달란트 비유(자본주의)에 사회적 책임(양과 염소의 비유)을 감당하게 하는 아직까지는 가장 바람직한 제도라고 봅니다.

 

  자본주의 원리 곧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신 재능을 땅에 묻어 두지 말고, 이윤을 남기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보람 있게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므로 약자나 어려운 자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우상이 되지만, 맡겨진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여 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돈이 맘몬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면 맘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 목사는 주님의 가르치신 말씀을 왜곡되게 전하고 있습니다. 

 

2) 홍 목사는 “절대진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순천 YMCA에서 나누었던 내용들을 보면 철저히 해방신학의 입장에서 대담을 하다보니 절대진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순천 YMCA에서는 홍목사를 5번째 사람 책 읽기 프로그램에 초대하여 소개하기를 “홍인식 목사는 자신의 삶과 해방신학을 통해 얻은 세가지 중요한 삶의 자세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고 하였습니다.

  그 세가지는 첫째, 다양성 존중. 둘째, 열린 마음. 셋째,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세가지 중 두 가지 내용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사람이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분쟁과 다툼이 있게 됩니다. 그 다양성은 진리 안에서 존중하는 것이지 진리를 떠난 다양성은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홍목사는 “절대진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따르는 기독교의 신앙을 상대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진리가 무엇입니까? 절대진리는 원죄와 자범죄로 죽어 있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 품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그리스도인의 삶은 진리 안게 거하는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바로 그 삶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신 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사는 것입니다(갈2:20).
 
3)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해석의 문제
  
  홍목사의 두 번째 삶의 자세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열린 마음은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고 경청하고 화목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서로에게 닫혀 있으면 소통이 되지 않으므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마귀가 공존하고 있고, 악이 성행하고 있기에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분별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 있다면 구분하고 막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교회를 혼란케 하는 자들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권면합니다.      그런데 홍목사의 주장을 보면 “소수자에 대한 냉대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사회를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소수자는 성소수자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소수자는 누구입니까? 동성애를 비롯한 제3의 성 젠더(Gender)를 의미합니다. 이는 성경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진리 안에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되 책임적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선택에 대하여 내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해야 합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렇게 홍 목사는 해방신학이라는 관점에서 세상과 교회를 보기 때문에 오히려 눈이 가리워져 신자본주의를 우상으로 규정하게 있고, 다양성을 강조하다 보니 절대진리가 없다고 하였으며, 열린마음을 강조하다 보니 성소수자에 대한 냉대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주장인 것입니다.  성경은 자본주의 원리를 말씀하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며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하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서 거룩하게 살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홍목사의 교훈은 성경의 교훈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왜곡된 이해

 

  순천중앙교회 홈페이지의 화면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더불어 사는 교회", 그리고 에큐메니안 지면을 보면 "교회, 더 근원적인 인권담론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장신대 신학춘추에에서 대담한 것을 보면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에 인권담론을 열라“고 주장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리고 "더불어 사는 교회" 얼마나 성경적이고 아름다운 말입니까? 문제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더불어 사는 교회"에 "교회, 더 근원적인 인권담론으로 돌아가라", 더 근원적인 인권담론은 곧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에 인권담론을 열라"는 것입니다.

  결국 홍목사의 하나님의 사랑은 성소수자(Queer)를 약자로 규정하여 성소수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함께 더불어 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소수자’들을 사회의 약자로 규정하여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목사의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된 관점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소수자이든 다수이든 모두가 다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며 사랑의 대상입니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도 구원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하여 성소수자들의 행하는 음란하고 가증한 행위를 묵인하거나 받아 드리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까지도 사랑하시지만 회개치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따라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가족과 이웃에게 무례히 행하는 것이며, 공동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자기 이익과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성애는 국가와 사회를 병들게 하는 불의한 일이며 이는 진리가 아니며 악한 것입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리는 반성경적이며, 반사회적인 일탈행위입니다.

  홍인식 목사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해방신학"이라는 안경으로 가리워져 있어 거룩성을 보지 못하였고, 인류사회에 악을 가져오는 죄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 교단의 순천중앙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성소수자를 보호 한다는 것은 순천중앙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순천노회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본 교단총회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홍호하는 퀴어신학에 대하여  ”이단성이 매우 높다고 하였고 본 교단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퀴어신학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신학도들에게 위험성을 교육하며 퀴어신학의 확산을 막아야 하며 퀴어신학을 옹호하는 어떠한 신학적 입장도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총회에서 결의된 것입니다.

 

 퀴어신학은 성경의 규범적 권위를 부인하며, 자의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성소수자의 성애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보며 더 나아가 성정체성의 구분마저 부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상대화한다. 더 나아가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기준에 의하여 전통적인 신학의 체계와 가치관을 파괴하는 세속화된 신학이다. 따라서 퀴어신학은 이단성이 매우 높은 신학이다.

”성경의 규범적 권위를 부인하며, 자의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성소수자의 성애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보며 더 나아가 성정체성의 구분마저 부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상대화한다. 더 나아가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기준에 의하여 전통적인 신학의 체계와 가치관을 파괴하는 세속화된 신학이다. 따라서 퀴어신학은 이단성이 매우 높은 신학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교단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퀴어신학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 해야 하고, 신학교에서도 신학도들에게 이 위험성을 교육하여 퀴어신학의 확산을 막아야 하며 퀴어신학을 옹호하는 어떠한 신학적 입장도 용납될 수 없다.

 

   그리고 2017년 102회 총회에서는 “동성애자 및 동성애지지 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 교단에 목회자나 신학생이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26조 [직원 선택] [개정 2012.9.20, 2017.9.21, 2018.9.13]
12.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 [신설 개정 2017.9.21] 

 

  그러므로 홍인식 목사는 퀴어 신학의 입장에서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거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일에 함께 한다면  더 이상 목사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홍 목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성소수자까지도 수용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탈동성애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차별이나 혐오가 아닙니다. 동성애로 인하여 망가져 가는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三. 맺는 말

 

  홍인식 목사의 섬김과 사랑의 목회는 존경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과 교훈이 온통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성경과 사회와 교회를 보게 되므로 자본주의의 자유시장경제를 우상으로 규정하였고, 다양성을 강조하다 보니 절대진리를 부정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왜곡, 본 교단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홍인식 목사의 글과 교훈이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다음세대를 무너지게 하는 거짓된 교훈이기에 이에 한국교회를 지키고 다음세대를 지켜야 하는 충성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이 지면을 통하여 홍인식 목사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성경과 세상과 교회를 보지 말고 성경의 관점에서 교회와 사회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홍목사님의 그동안 탐구해오셨던 해방신학의 관점이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왜곡된 해석들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NCCK 인권센터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에 동참하므로 가룟유다처럼 한국교회를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차별금지법은 교회를 망하게 하는 법이며, 차별금지법이 통과 되면 성경말씀을 근거로 하여 잘못된 이념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설교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설교하는 동안 많은 제재를 받게 됩니다. 이는 역차별을 의미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종교의 평등의 논리에 따라서 기독교 학교나 복지시설에서 예배드리는 것 조차 간섭받는 가운데 있습니다. 학교 평준화로 인하여 기독교 사학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시고 남은 목회여정 오직 하나님이 주권을 존중하는 참된 목사로서의 사명 감당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저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되면 공개적으로 말씀하셔도 좋고, 아니면 저의 이메일 주소(rsn77@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목사님의 해방신학에 대하여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2020.6.15.

 

   류승남 목사 (제주노회 .신촌교회)

   제주노회바른사회문화대책위원장

   예장통합정체성과교회수호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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