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서 목사로 새로운 사명의 길을 걸어 왔고, 사명이 중단 되지 않는한 앞으로도 계속 걸어 갈 것이다.11970. 초등교사로, 1982년 서울특수학교 교사로, 1992년 목사로, 2017년 행정사로, 2018년 예정연 대표회장으로, 2019년 예장통합뉴스 대표로, 2020년 한세연 대표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7.13. 행정사 최경구 사무소 이전 개소)
교사에서 목사로 새로운 사명으로
필자가 2018년 8월부터 한국교회와 통합교단의 이슈 문제와 소속 교회에 대해 개인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다루게 되었다.
지금은 국가적인 문제와 한국교회적인 문제와 특히 본교단 총회와 소속 교회에 대한 문제로 어느 누구와도 의논없이 주로 필자의 감동데로 글을 쓰는 편이다.
나는 원래 어릴때부터 말을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지나고 보니 또래 집단에서 늘 리더로 활동한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전교 생활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중학교 시절은 반장으로 또래들을 주도한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떻게 안동고등학교를 300명 가운데 중간 정도 실력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는 교내 주먹들과 어울려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응하지 않아 성적을 낼 수 없어서 전교 306명 가운데 304등을 낙제 직전까지 갔었고 한때는 퇴학 직전까지 갔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대학 실력으로 엄두도 나지 않던차에 안동교육대학에서 교원양성소를 개설하여 당시 초등학교 교사 부족을 채우기 위해 6개월 단기로 교육을 받고 다음해 9월에 경북 울진 바다가로 희망하여 발령 받았다.
경북 울진 바닷가에서 근무중에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친구가 애인을 데리고 와서 바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다가 밀려 오는 파도에 나는 휩쓸려 들어가서 죽은 줄 았았는데 정신을 바짝 차렸더니 살았다.
두메산골에서 예수님 믿다.(1974,4,1)
울진에서 1년 6개월 교사로 근무하다가 포항 인근 면사무소에서 걸어 2시간 들어는 두메산골에서 초등학교에서 3년을 근무하던중 3년차에 시골 전도사가 시무하는 개척교회에서 부흥회에 나가서 믿게 되었다.
필자를 전도한 고등공민학교 여학생의 요구에 의해 억지로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그날은 1974년 만우절 4월 1일이였다. 첫날 부흥회 설교 듣고 학교 사택에 돌아와서 밤이 새도록 성경을 읽었고 아침에 출근하여 학교 도서실에 보관된 세계 3대 성현 공자, 석가, 예수님에 대한 전기 3권을 읽었다.
그 당시 생각은 공자는 당시 정치가로 주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벼슬을 하서 제자들을 키우다가 수명이 다하여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남기고 별세했다.
석가의 전기에 의하면 가비랴 성주의 아들로 출가후 제자 춘다가 준 버섯을 먹고 복통으로(독버섯이 아닌가?) 신음하고 있을 때 주위에 둘러 앉은 제자들이 슬퍼할 때 석가는 ‘사람은 무릇 죽음을 피할 수 없다’라고 하시면서 세상을 하직 했다.예수님은 생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뒤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셨다.
그렇다다면 누구를 믿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나왔다. 이왕지사 믿을바에야 3대 성현 중에 한분을 맏으려면 당연히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40년 지난 지금까지 믿어 결국 목사까지 되었다.
초등과 특수교사 생활
(2023.7.13. 행정사 최경구 사무소 개소)
예수님을 믿고 만 1년이 지나서 결혼하고 포항 인근 초등학교로 발령 받은 한 학교에서 5년 근무했다. 그때 다니던 교회가 통합측 교회인데 거기서 성가대 지휘 자, 주일학교 교사, 청년회장 당시 동해노회<현재 포항노회> 청년연합회 회장과 전국청년연합회(통합교단 장청) 중앙위워까지 활동해서 민주화 투쟁에 따라 다니곤 했다.
제가 근무하던 학교는 동학년 3반 있었는데 매달 월말고사를 통해 최우수반에는 우수반 패 같은 것을 주었는데 줄곧 내가 가르치는 반이 도맡아 차지했다.
나 때문에 옆반 선생님은 퇴근도 하지 않고 이이들을 붙잡아 놓고 가르칠 정도로 당시 아이들 성적 올리기에 열기가 대단했다.
나는 당시 학교뒤에 교회가 있었는데 수업중에도 교회에서 큰 행사가 있으면 학생들 자습시키고 다녀 올 정도였다. 학교 복도에서 찬송을 부르면서 동료 교사들은 예수에 미쳤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믿음의 열정인지 아니면 무지인지에 -- 지혜롭게 믿어야 하는데 ---
그러다가 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목회 활동에 은혜 받았고 6년차에 이웃 학교로 발령이 났었는데 3년차에 공립학교 사표 쓰고 서울로 통합교단 신학를 공부하여 목사가 되기 위해 올라 왔다.
서울 특수학교 근무
(2023.7.23. 행정사 최경구 사무소 내부)
나는 초등교사 자격도 있었지만 당시 특수교사 자격을 취득하여 서울에서 사립특수학교에 근무했다. 여기서 6년 근무하면서 주임교사로 승진하고 학교 교장 선생님과 이사장이 크리스찬이라 매주 장애 학생들을 모아서 매번 예배를 드렸는데 신학생이라고 필자가 설교를 도맡아 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아닌 교사들은 불평이 많았고 필자를 학교 운영에 이슈가 있으면 나를 앞세웠기에 투쟁 아닌 투쟁도 여러번 경험했다. 그 학교에서 자리 잡아 주임교사도 맡았기에 꼭 목사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초 생각과 다른 생각으로 3년을 장신대에 진학하지 않았다.
그래서 야간 신학교를 마쳤치고 3년 지나 사표 쓰고 장신대 목연 거쳐 교회 교육전도사로 전임전도사로 7년을 지나 1991년 12월 전도사로 개척하여 다음해 4월 봄노회에서 목사로 안수 받았다.
니는 그동안 신학외에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초등교육학과(초등교사 자격)와 행정학과(행정학사) 2개 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행정대학원을 거쳐 서울신학대학원(문학석사)을 졸업했다. 자격으로는 초등교사와 특수교사와 국가공인 행정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계속
2023.8.4
예장통합뉴스 대표 최경구 목사
<저작권자 ⓒ 예장통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