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청 출신 목사이다.

동해노회 청년연합회 회장, 장청 중앙임원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19/08/29 [16:14]

나는 장청 출신 목사이다.

동해노회 청년연합회 회장, 장청 중앙임원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19/08/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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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청 출신 목사입니다.

(전국청년연합회)

 

나는 어릴적에 가끔 교회에 친구들 따라 간 적 있다. 그러나 정식적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은 1973년이였다. (1970.9. 초등교사 초임) 경북 어느 두메 산골에서 (버스로 내려 3시간 정도 걸어서 들어가는 곳)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했다.

 

두메 산골 벽지에서 3년을 교사로 근무했는데 근무 3년째 41일에 고등 공민 학생의 전도를 받고 조그마한 개척교회에 부흥회에 초대받아서 그날 저녁 은혜를 받아서 정식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그날 저녁에 학교 사택에서 기거했는데 집으로 돌아와서 밤을 새워 성경을 읽고 다음날 새벽기도부터 자발적으로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당시 전도사 시무)

 

아침에 학교에 출근하여 수업을 파한 후 도서실에서 책 3권 공자 석가 예수에 대한 전기집이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죽음에 대한 성인들의 견해였다. 공자는 죽음에 대해 인명은 재천’ 이라고 했고, 석가는 제자 춘다가 준 버섯을 먹고 복통을 일으켜서 죽음 직전에 둘러 앉아 슬퍼하는 제자들을 향해 무릇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고 하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어 삼일 뒤에 살아나신다 라고 3번에 걸쳐서 예언을 하셨고 (17:23) 그 예언대로 살아나신 (부활) 것이다.

(20: 14)

 

나는 소위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계 3대 성인의 책을 읽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고 과거에 예수님에 대한 기적에 대한 것을 믿지 않았는데 그날 이후로는 성경의 모든 것이 믿어지게 되었다. 나를 전도한 여학생이 나를 보고 선생님은 나중에 목사님이 되겠네요 라며 예언을 한 것인데 그 예언대로 나는 오늘의 목사가 된 것이다.

 

그 다음해 결혼하여 경북 포항시 인근 초등학교로 전출되어 통합측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27살이였고 그 교회에서 집사로 임명 받아서 청년회장과 성가대 지휘자와 교회학교 교사로 나름대로 부지런히 섬겼다. 그때 청년회원들을 이끌고 이웃 작은 마을 어려운 교회를 찾아 다니면서 트럭차에 올라타고 부지런히 전도한 기억이 생생하고 가끔 지금도 그때 청년회 활동을 한 분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나누며 가끔 연락을 하곤 한다.

 

동해노회 청년연합회 회장과 장청 임원

(지금은 포항노회포항남노회로 분립)

 

당시 나는 몇년동안 교회 청년회장으로 교회를 섬겨서 동해노회 청년연합회에 나가게 되었데 거기서 첫해에 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다음해에 동해노회 청년연합회 회장이 되었다. 그때가 70년대 중반이라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 독재 시절이라 대학가와 교회 청년들 중심으로 일부 목사님들의 강연과 거기에 동조하여 같이 데모에 합류하기도 했다.

 

장청 활동

 

그때 나는 장청 (통합교단 전국 청년연합회 일명 장청’) 중앙위원으로 임원으로 활동을 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서울에 YMCA 로 가끔 올라와서 회의한 기억과 전국에 돌아가면서 큰 교회당을 빌려서 당시 청년들을 이끌고 반정부 투쟁을 하던 인명진 목사와 금영균 목사와 홍성현 목사와 고인이 된 고영근 목사님 등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1982년에 통합측 목사가 되려고 신학 공부를 위해 공립학교 교사직에서 사임하고 어린애들 3명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 왔다.

 

통합측 목사가 되기 위해 야간 신학을 위해 서울로

 

나는 초등교사 자격 외에 특수학교 교사 자격을 취득해 두었기에 당시 서울에서 마포에 있는 사립특수학교 취직하여 교사로 근무하면서 야간에 서울장신에서 공부하여 부천에서 교육전도사로 5년을 겸직하고 특수교사 사임하고 전임으로 2년 시무하다가 199112월부터 단독으로 가족 5명으로 처음 전도사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단독 개척교회 시작

 

그 이듬해 19924월 봄 노회시에 목사 안수를 받고 정식으로 목사라는 이름 달았던 것이다.

 

나는 개척하자 말자 밤낮으로 전도하면서 다음해 중동신도시 아파트 단지 상가로 교회를 이전하여 갓 입주한 아파트 주민을 상대로 부지런히 전도하였다. 당시 나는 중동신도시 목회자 연합회를 주도하여 회장이 되서 이웃 교회들과 교파를 가리지 않고 목사님들끼리 교제하였다.

 

중동신도시로 교회를 이전하여 새벽기도 출석 인원이 70여명 정도가 모이기 시작했고 주일에는 상가 교회에 자리가 복잡할 정도였다. 또한 개척한지 몇 년이 안된 목사가 뭘 안다고 국민일보나 기독교 신문 등에 세미나를 광고하여 전국으로 알려서 개최하고 부흥회도 다녔다.

 

부흥회 인도 및 세미나 개최

 

그때 세미나 장소로 종로 5가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세미나실과 저의 상가 교회와 부천과 광명시의 어느 큰 교회당을 빌려서 본인이 주강사가 되어 여러번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당시 세미나의 주제는 교회바로세우기와 설교 및 예화 세미나와 전도 세미나 였다. 한국교회 100주년 세미나실에서 강의할 때는 나는 주로 설교와 예화 세미나 강의를 맡았고 전도 실천 간증은 주로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당시 과천교회 집사였고 전도 강의는 과천교회 부목사 김병준 목사였다.

 

교회 건축

 

이러한 나의 활동으로 알려지게 되고 교인들도 불어나고 해서 개척 4년만에 중동신도시에 일반 부지를 매입하고 5년째 건축을 시작했다.  그런데 건축 중 1997년에 IMF로 갑자기 국가부도사태가 벌어졌다. 그 여파로 건축 중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지만 완공하여 1년을 버티다가 건축비를 지불하지 (15억 정도 사실상 부도) 못해서 결국 다른 교회로 넘겨주고 이웃 아파트 단지 내 지하 상가로 옯기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여파로 21년째 지하실 교회 2번째 옮겨서 목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사로 세상 직장 경험 20년을 해 본 사람이다. 또한 교회를 남의 도움없이 교회를 생개척 해보았고 15억에 해당하는 교회당도 건축도 해보고 부도도 경험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 개척과 건축과 부흥에 대한 아쉬움이 많기에 다른 목사님들이 피눈물로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잘하고 계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하게 되고 부럽기도 한 것이다.

 

나는 다른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 내가 고통을 겪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명성교회 문제 이전에 3개 교회를 내가 주신 하나님의 은사로 도와서 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

 

명성교회는 한국교회 모델이다.

 

나는 명성교회에 대해 김삼환 목사님이나 그 교회 집사님 한 분과도 전혀 일면식도 없지만 평소에 개척하여 세계적으로 거대한 교회를 이루고 한국기독교의 부흥과 성장을 주도한 명성교회에 대해 김삼환 목사님을 존경했다.

 

그래서 통합교단하면 명성교회가 떠오르고 명성교회하면 김삼환 목사님으로 생각한다. 또한 한국기독교의 연합운동하면 김삼환 목사님을 외면하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명성교회는 교단적으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헌신을 한 것을 교파를 초월하여 모르는 목회자들이 없을 정도이다.

 

이런 명성교회가 진리 문제도 아닌데 김삼환 목사님의 후임 목사 청빙 문제로 교단 내 일부 목사들과 외부 불의한 기독시민단체들과 일부 좌편향된 언론들에 의해 부당한 압력과 공격을 수년동안 받고 있다.

 

도대체 명성교회가 무슨 잘못을 범했는가 ? 자신들에게 무슨 직접 피해를 준 일이 있는가 ? 지금까지 교단과 신학교와 지역을 위해 국가를 위해 외국 선교지를 위해 수많은 헌신을 했건만 알아 주기는 커녕 막무가내식으로 장로교회의 근본인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목사 청빙을 세습이라는 당치도 않는 말을 퍼트리면서 어렵게 하고 있다.

 

지금 명성교회는 김삼환 원로 목사님과 자신들이 선택한 목사를 중심으로 일절 흐트러짐 없이 똘똘 뭉쳐서 이 난관을 잘 극복하고 있다.

명성교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 자신들의 교회 목사를 교단 소속 목사로서 자신들이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거늘 왜 이리들 난리를 피우는가 ?

 

공교회라고 간섭한다 ?

 

정말 웃기는 일이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6:17)

그리고 지상에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만 주인이신가 ? 아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과 산천초목과 바다도 우주만물 모두가 주님이 주인이시다. (1:1)

 

지난주에 평신도연대라는 해괴한 단체를 만들어서 전국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시위하는 정모라는 사람이 있다. 자기딴은 집사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건전한 교회 집사인지는 모른다. 자기들딴은 엄청 의롭다 라고 생각하면서 전국 교회 돌아다니면서 시위하고 다닌다.

지난주에 우리교회도 왔다. 나를 명성교회 세습을 지지하는 앞잡이라고  하면서 1인 시위한다고 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도 북한식 세습은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인들이 합법적인 민주 절차에 의해 담임목사를 청빙 선택하는 것은 장로교회의 대 원칙이다.

 

그리고 은퇴 목사의 후임으로 목사의 배우자든 자녀든 사촌이든 오촌이든 교단 내 목사 자격을 갖추었고 그 교회 교인들이 과반 이상 좋아서 선택하면 (본 교단은 3분의 2의 찬성) 민주국가의 헌법이다.

 

대통령 자녀도 국민이 선택하면 대통령 되고 총회장 자녀도 총대들이 선택하면 총회장 되고 장로 자식도 교인이 선택하면 장로된다. 또한 국회의원 자식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주민들이 선택하면 국회의원이 된다.

 

명성교회가 뭐가 문제가 되나 ?

 

김삼환 목사님의 후임으로 본교단 목사 자격을 갖춘 아들 김하나 목사를 교회 공동체에서 75%가 찬성하여 선택하여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