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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단 개혁은 목사들로부터 (시리즈 1)

오염된 통합교단 목회자들이 달라져야

예장통합뉴스 | 기사입력 2021/03/04 [13:00]

통합교단 개혁은 목사들로부터 (시리즈 1)

오염된 통합교단 목회자들이 달라져야

예장통합뉴스 | 입력 : 2021/03/04 [13:00]

 교사 20년 - 목회자 36년 - 명성교회 등을 경험하면서  

 * 이런 과정을 걸치면서 통합교단 개혁은 목사들로부터 --    

 

  (2021.3.3. 방송인 모임 설교)

 

통합교단 개혁은 목사들로부터 1 

(교사 20목회자 36명성교회건 등을 경험하면서) 

 

나는 이런 목회자였다. (최경구 목사)

  

통합측 목회자 개혁에 앞서 먼저 제 자신부터 소개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우선 나는 이런 목회자였다로 시작한다.

 

나는 교사로서 20(초등, 특수겸임교수 경북, 서울 등)과 목회자로서 36(목사 29년, 전도사 7) 도합 가르치는 사역만 56년을 경험한 사람으로 2020.12.17일에 공식적으로 은퇴한 목사이다.

 

이제는 부천노회 영원한교회 원로목사요, 노회 공로목사이다. 나는 한때 (1992) 교회를 순수하게 생개척하여 4년 만에 교인이 숫적으로 크게 부흥하여 성도들의 충동에 의해 기반도 없이 15억에 해당하는 교회당을 건축해서 준공해 본 일도 있다.

 

1997년 국가 부도인 IMF를 만나 겨우 준공은 하였으나  도저히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서 1년만에 이웃교회에 넘겨 주고 199812월에 겨우 몸만 빠져 나와 근처 아파트 지하 상가로 옮겼다.

 

당시 교회당 건축 부도는 상가에서 갑자기 숫적으로 부흥은 했으나 이제 막 출석한 성도들이기에 교회 재정을 모아 놓은 상태가 아니였다. 그래서 교인들의 충동에 의해 교인 40여 명이 마을금고에서 1000만원짜리 통장 40개 적금을 들고 우선 대출을  받아 건축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건축 도중에 IMF을 만나서 교인들이 빌려 온 사채와 건축 인부들의 노임과 자재비 대금을 갚지 못해서 부도가 난 것이다.  그때 내가 과거에 전도사로 시무하던 C 교회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나는 교회 생개척 이후 3-4년 될 즈음에 전국적으로 부흥회와 세미나를 주관하여 나름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에 교회당 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세미나 주제: 교회 살리기, 설교 이렇게 해라, 이런 예화 설교때 써라)

  

지금 와서 돌아보면 당시 적립된 재정없이 무리하게 교인들의 말만 듣고 교회당 건축을 한 것이 인간적으로 보면 크게 오판한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통해서 지금은 내게 자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교회당 건축은 무리하게 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그때 그때 모이는 재정을 바탕으로 조금씩 형편대로 교회당을 넓혀 갈 것을 주문한다.

 

부천노회 활동(199810월 서울서남노회로부터 분립)

 

나는 세상에서 교직 생활 18년을(겸임교수 2년 총 20년)  경험하고 신학을 공부하였기에 당시 43살인 19924월에 지금의 서울서남노회에서 늦깍이 목사로서 안수받은 것이다.

 

그리고 199810월 부천노회로 분립되기까지는 노회에서 일절 발언 하지 않고 선배들의 노회 활동만 지켜 보았다. 그리고 부천노회가 분립되고서부터 조금씩 발언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발언은 주로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권익에 관한 것을 대변하였다.

 

그때 노회 분위기는 미조직 교회 목사는 시찰장과 총대와 노회임원에 대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때 였다. 그리고 노회내 빅 3라고 할 정도로 교세가 큰 교회 목사들 3명이 노회를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그리고 많은 미조직 교회 목사들은 그 3개 교회에 줄서기식으로 보조도 받고 굽신굽신 처신을 하였다. 그때 나는 눈치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내 작은 목소리를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주로 발언하는 것은 미조직교회 권익에 대한 것으로 노회 임원과 부.원장과 시찰장과 총회 총대 참여에 대해 불이익을 당하는 것에 대해 주로  발언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회내 대형교회 목사와는 맞설 수 밖에 없었고 거기에 동조하는 분들과 대척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의식 있는 분들은 기득권을 무서워하여 드러내지 않고 묵시적으로 나의 뜻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 많은 목회자들은 대형교회 목사들과 장로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분들의 눈이 무서워서 불이익을 당할까 감히 드러내어 나의 발언에 지지한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나는 외로운 전투를 수년간 한 것이다. 그러다가 2002년 가을 정기노회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임원을 선출한 문제로 총회와 사회법에 소송을 하였다.

 

이로 인해 노회와 총회는 기각 한 것을 사회법으로 소송하여 노회 임원 9명 전원을 직무정지 가처분에서 승소하여 노회 임원 9명 전원의 직무를 정지 시켰다.

 

물론 노회는 지역에서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고 나는 변호사 없이 직접 서류를 만들어서 승소한 것이다. 이런 일로 노회는 발칵 뒤집어지고 전 노회원들이 탄원서를 작성하여 있는 말 없는 말 모두 모아 거짓으로 법원에 제출했지만 결국 법은 내 손을 들어 주었다. 

 

이 일로 인해 법원은 노회장과 서기의 직무대행자를 지정했고, 한동안 노회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에 변호사의 코치로 임원 9명이 모두 법원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이로 인해 사실상 부천노회 임원 9명 전원이 사임하므로 인해 내가 낸 소송이 – 임원무효건 인데 임원 전원 사임으로 법원은 실익이 없기에 기각 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법 소송건은 실제적으로 나와 다른 한명 원고측 채권자로 최종 승소한 것이다.

 

이런 사건 이후(2003년 초) 3의 기득권 위세가 꺾이고 미조직 교회 목회자들도 시찰장과 임원들과 총대로 진출하게 되었다. 나도 점점 노회 안에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미조직 교회나 조직교회의 목회자들도 점점 동등하게 노회 제반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부천노회 사건을(2003년)  당시 한국기독공보와 목회자신문과 뉴스앤조이에서 다루었기에 전국적으로 파급을 주어서 전국 노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 노회에서 정족수 미달로 인해 정회하고 다시금 한달 뒤에 노회를 개회한 일도 있다.

 

이때도 노회 개혁 차원에서 내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과거에는 노회원들의 참석 숫자에 관계없이 노회를 진행하다가 부천노회 사건으로 정족수 등을 의식하여 노회 운영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전국 노회가 점점 노회규칙과 총회 헌법에 맞추어서 운영하게 되니 나로서는 누가 뭐래도 노회나 총회에 크게 공헌했다라고 지금도 나름대로 자부심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아마 이러한 것이 바탕이 되어 하나님께서 명성교회건 문제에 나를 개입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서울 사립특수학교 교사 시절(1982-87) 설립자의 자녀들로 구성된 학교에서 다른 교사들의 권익을 위해 나름의 많은 투쟁을 했고 나 나름대로 많은 성과도 거두었고 학교를 사임하고 신학공부하여 목사가 된 것이다.

 

명성교회 총회재판건에 대한 당시 여론(2018.8.7.)

 

▲     ©예장통합뉴스

  

나는 명성교회와 아무 상관도 없고 그 교회 사람들과는 어느 누구 하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201887일 총회 재판의(국장 이경희 목사) 여파로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명성교회는 총회 재판에서 승소하고도 재판국원들이 돈과 권력에 굴복하여 불의한 재판을 했다고 언론들과 반명성측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었다전국적으로 각 노회와 신학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각종 성명서를 쏟아내고 명성교회 보고 신사참배 보다 더 나쁘고 맘몬과 우상숭배라고 몰아 붙이고 있었다.

 

여기에 앞장선 사람들을 살펴보니 통합교단의 은퇴한 거목들과 장신대 교수들과 신학교 교수로서 대형교회 목사로 부임한 분들과 특정지역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총회 재판을 부정하였다.

 

당시 JTBC와 같은 대형 일반 언론들과 CBS 기독교 방송 마저 명성교회에 등을 돌리고 세습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총 공세로 돌입하였다. 

 

그리고 당시 분위기는 명성교회로부터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는 분들과 명성교회 부목 출신들로 구성된 교회 마저도 아무 소리없이 그저 지켜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눈치 빠르게 반명성 대열에 서서 동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또한 당시 명성교회를 자주 찾고 원로목사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일부 증경 총회장들과  전국 각 지역 인사들 마저 등을 돌리고 오히려 공격에 대열에 서거나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89월 가을 총회를 통해 총회재판을 엎은 것은 물론이고 명성교회에 대해 당장 무슨 큰 조치 – 원로나 그 아들 김하나 목사를 퇴출 시킬 –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 가고 있었다. 

 

또힌 교단내 반명성 인사들과 일반 언론과 CBS를 중심으로 연일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부자에 대해 이런 저런 소리를 만들어 내었고 심지어 MBC PD 수첩에서는 근거없이 비자금 800억에 대한 것 까지 방영하였다.

 

이런 분위기로 몰아 갈 때 과연 누가 명성교회를 옹호할 것인가 ? 만약 그때 명성교회에 대해 우호적인 말을 하면 당장 세습 옹호자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을 할 정도였다.

 

명성교회건에 대해 나는 무지하게 뛰어 들었다.

 

▲     ©예장통합뉴스

           http://www.pckci.com/2056

 

내가 처음 명성교회 건에 뛰어든 것은 약 3년전 2018.8.7. 총회재판 결과를 보고  개입한 것이다.

 

이 뒷 부분부터는 다음 통합교단 목회자 개혁 시리즈 2에서 다룰 계획이다. 그리고 명성교회건에 대해 3년간 활동을 통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그런 점에 대해 앞으로 계속 기사화할 것입니다.

 

예장통합뉴스는 여러분들의 좋은 제보를 기다립니다. 통합교단과 일반 교회 문제에 대해 검토 후 기사 참조 및 기사화 합니다.

(메일 kyungku5@hanmail.net)  

 

2021.3.4.

 

한세연과 예정연에 대표회장 최경구 목사

예장통합뉴스 대표(네이버, 다음 검색)

국가공인행정사

행정사연구회 회장

장로교언론협회 공동회장 

교회법연구소 소장

부천노회 전노회장

부천노회 공로목사

영원한교회 원로목사

010-405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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